남북공영 기대감 키운 평양 정상회담
들뜬 분위기 불구 잇단 경제 위험신호
무지개만 좇다간 배가 침몰 할 수도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호사다마는‘좋은 일엔 탈이 많으니 경계하라’는 뜻이다. 정상회담 내내 이 말이 맴돈 건 최근 몇몇 꺼림칙한 뉴스의 그림자가 묘하게 어른거린 탓이었을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정상회담은 분명 좋은 일이다.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을 이루게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당장 남북 정상이 긴밀하게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바람직하다. 특히 평양 시민들을 향한 문 대통령의 육성연설이나,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합의는 획기적 진전이다. ‘퍼주기 외교’라는 지적도 있지만, 좀 베풀면서라도 한반도 평화 대세를 만들어나가는 게 옳다.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닦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의 동방정책이 그랬다.
관계개선에 따른 경제협력의 진전은 북한은 물론, 성장 한계에 이른 우리 경제에도 획기적 돌파구가 될 것이다.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진작부터 “남북이 통일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실 남북이 단일경제권으로 재편될 경우, 중국 동북 3성을 포함한 만주 일대와 바이칼호에 이르는 러시아 중부, 극동의 블라디보스톡까지 한반도 경제권역이 될 수 있다. 단순히 남한 자본과 북한 노동력 등을 결합한 북한 개발을 뛰어넘어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하는 동북아 경제의 새로운 핵심으로 거듭날 기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공영의 꿈은 아직 아득한 반면, 당장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먹구름은 문 앞에 잇달아 닥치고 있다. 회담 사흘 전에 나온 꺼림칙한 뉴스 중 하나는 중국 소비자 선호 50대 브랜드 조사결과다. 애플과 나이키 등 서구 브랜드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선호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그 자리를 알리페이 화웨이 등 중국 토종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실제 2016년만 해도 50위 안에 든 중국 브랜드는 18개에 불과했으나 올해엔 30개에 달했다.
그런데 중요한 대목은 아직 선호도 50위 안에 남은 해외 브랜드 20개 중 2016년만 해도 중국인 선호 브랜드 7위였던 삼성전자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 등 4개사의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중국에서 삼성 선호가 급강하 한데 이어, 나아가 세계시장에서는 중국의 ‘인해전술’이 삼성을 추월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했다.
삼성 관련 사례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전반적 위기의 단면일 뿐이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 업계에선 “떠오르는 중국시장은 우리의 것”이라는 암묵적 기대가 충만했다. 실제로 이후 20여 년 간 철강 자동차 등 전통 중후장대 부문부터 가전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완제품과 중간제의 대 중국 수출이 붐을 이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젠 주력 제조업은 힘을 잃고, 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뒤처지면서 중국에 대한 우리 산업의 비교우위는 심각하게 약화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산업의 비교우위 약화가 비단 중국에 대해서만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진작부터 선진국과 후발 개도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우리 산업은 구조조정과 혁신이 장기간 지체되면서 격동하는 국제분업체계 속의 입지가 하루가 다르게 위축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저성장, 제조업 위기, 실업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예사롭지 않은 병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경제정책은 세계와 미래를 겨냥한 절실한 도전보다 ‘정의로운 분배’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그나마 혁신성장을 위한 각종 규제완화 법안조차 국회 내 강경파의 저항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상회담으로 소망의 무지개를 펼쳐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잇단 경제 위험신호들까지 외면한 채 들떠 돌아가는 건 위험하다. 남북간의 호사(好事)는 아직 먼 길을 남겼으되,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다마(多魔)는 임박했기 때문이다. 자칫 남북공영의 항구에 닿기도 전에 배가 침몰할 지경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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