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농단 기승전결-2] 속속 드러난 박근혜-양승태 '실거래' 정황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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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외에도 ‘조직의 이익’이라는 명목 아래 헌법상 보장된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했다.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일선 법원의 재판에 개입했고, 검찰이 법관 비리 관련 수사에 나서면 영장전담판사를 활용해 수사기밀을 들춰보고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
재판부 위헌제청 결정, 양승태가 뒤집어
양승태 사법부는 1988년 설립된 헌재가 주요 현안에서 결정을 내리며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수록 대법원 위상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 특히 헌재가 헌정사상 처음 정당해산 결정을 내리자, 자칫 사법부의 권한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온갖 견제 방안을 검토했다.
구체적으로 행정처는 2014년 12월 옛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이현숙 전 도의원이 제기한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에서 재판부의 심증을 미리 빼내고, “국회의원직 판단 권한은 사법부에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판결문에 들어가도록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헌재가 정당해산 결정에 더해 소속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한 것이 월권임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이 같은 요구는 박병대 전 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상임위원을 통해 담당 재판부에게 전달됐다.
결국 재판부는 2015년 11월 “지방의원 퇴직은 부당하다”고 선고하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당연 퇴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며’라는 구절을 판결문에 넣었다. 행정처의 의중이 판결에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행정처가 특정 문구 삽입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실수로 기자단에 노출되자 뒤늦게 삭제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일선 법원의 결정을 뒤집은 정황도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행정처는 2015년 서울남부지법이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의 재직기간 산입 여부를 놓고 헌재에 ‘한정위헌’ 여부를 묻는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내리자, 이를 재판부 직권으로 취소하도록 압박을 넣었다. ‘한정위헌’은 법률을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우에 한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재 결정의 한 형태다. 법률을 해석이라는 법원의 고유 권한을 제한하는 결정으로, 그간 대법원은 “한정위헌은 위헌 결정이 아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남부지법의 결정을 못마땅하게 여긴 양 전 대법원장은 실장회의와 이규진 전 위원을 통해 재판장에게 의중을 전달했고, 재판부는 결국 결정을 직권 취소한다. 이미 당사자에게 결정 사실이 통보된 상황이었음에도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처 전산정보국이 동원돼 내부 전산망에서 결정문이 열람되지 않도록 은폐조치까지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행정처는 당시 헌재에 파견 근무 중이던 최모 부장판사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건의 헌법재판관 평의 내용 등 헌재 내부 정보를 빼내도록 했다. 보고는 임 전 차장과 박 전 처장을 거쳐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수사기록 빼내고 영장지침 하달
양승태 사법부는 법관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검찰 수사내용을 파악하고 관련 영장을 기각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처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자, 검찰이 영장전담판사에게 제출한 수사기록을 행정처로 빼돌렸다. 비리에 연루된 김수천 전 부장판사와, 법관 출신 최유정 변호사에 대한 수사기밀이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뇌물수수 의혹 판사들의 부모, 배우자, 자녀의 이름 등을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을 통해 영장전담판사에게 전달하고 “검찰이 영장에 이 사람들을 끼워 넣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고 잘 보라”는 지침을 내려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 법조비리 사건의 수사 확대를 우려해 재판 과정에 개입한 정황도 발견됐다. 당시 검찰은 문모 전 부산고법 판사가 수 차례 향응을 제공 받았던 부산지역 건설업자 정모씨에게 그의 재판 관련 정보를 누설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행정처에 통보했다.
별다른 징계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행정처는 정씨의 항소심 변론이 조기 종결되자 서둘러 재판에 개입했다.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경우 법관의 비위 사실을 알고 있는 검찰의 불만이 커져, 사건이 확대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고영한 전 행정처장은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에게 “변론을 재개해 1, 2회 공판을 더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전화를 했고, 재판장에게까지 전달됐다.
실제 2016년 9월 종결됐던 항소심 변론은 고 전 처장의 요구대로 재개됐고 두 차례 추가 변론을 거쳐 이듬해 2월 선고됐다. 재판부는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정씨의 뇌물공여 혐의 가운데 일부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또 행정처는 법원 강제집행 과정에서 노무 인원을 부풀려 금품을 챙긴 법원 집행관 사건이 불거지자, 피의자의 체포ㆍ압수수색 영장 및 통신내용, 참고인 진술, 수사보고서 등 기밀자료를 파악하고 수사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에 대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구속영장 등 관련 수사기록을 보고받았다.
상고법원 반대하면 ‘불이익’ …정치권ㆍ언론엔 로비
사법농단 사건의 시작점이었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도 검찰 수사 대상이다. 앞서 대법원은 세 차례 자체조사 끝에 뒷조사를 당한 판사들이 인사 등에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후 검찰은 사찰 대상이 된 법관들을 상대로 구체적 피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또 행정처는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비법관 단체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변협 압박을 위해 검토했던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화 방안’과 실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사이에 윗선의 영향력이 행사됐는지 수사 중이다.
한편 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정치권 로비를 진행하면서, 홍보를 위해 언론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법원 자체조사로 공개된 행정처 문건에는 학연ㆍ지연을 접촉루트로 활용하는 국회의원 로비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특정 의원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언급하는 등 관련 재판을 활용하려 한 대목도 등장한다.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가 예산 전용을 통해 확보한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 ‘[사법농단 기승전결-4] 검찰의 칼 다 튕겨낸 법원의 절대실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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