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농단 기승전결-1] ‘자정’ 기회 세 번 놓친 법원… 결국 공은 검찰로’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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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발표된 대법원 자체조사에서 이른바 ‘국정운영 뒷받침’ 문건이 등장한 때만 하더라도, 재판거래는 그저 ‘의혹’ 차원에 불과했다. 당시 검찰 고발로 의혹을 풀자고 주장했던 소장파 판사들조차 진상규명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자는 취지였지, 거래 의혹이 ‘실거래’로까지 이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세 달 넘게 진행되는 동한 상황은 급변했다. 가장 공정해야 할 법관들이 ‘그들만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신성한 재판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청와대와의 이해관계를 맞추며 긴밀하게 협조했을 수 있다는 정황이 폭넓게 드러난 것이다.
일제 ‘전범기업’ 편에 선 대한민국 대법원
23일까지 이뤄진 한국일보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대법원과 별도로 3심을 담당하는 법원으로 양승태 사법부의 숙원사업) 도입 ▦재외공관 법관 파견 ▦법관 정원 증원 추진 등 주요 현안을 안고 있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관심을 둔 주요 사건의 진행 경과 등을 적극적으로 보고하며 여러 통로로 일선 재판에 관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중 핵심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이었다. 강제징용 소송을 두고 오간 청와대와 대법원의 ‘거래’는 오랜 기간, 매우 긴밀하게 이뤄졌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강제징용 소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12월과 2014년 10월 두 차례에 거쳐 청와대ㆍ행정처ㆍ외교부 3자 회동을 열었다. 청와대는 회동에 참석한 차한성(1차)ㆍ박병대(2차) 전 행정처장을 통해 대법원에 계류 중인 강제징용 소송을 연기하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재판 결과를 뒤집고자 했다. 박정희 정부 당시 체결한 한일청구권 협정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일본과 진행 중이던 위안부 합의 협상을 완결시키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행정처는 전국 각지의 모든 강제징용 소송 진행 경과를 보고했다고 한다. 또 2015년 1월 정부 등 참고인이 제3자 간의 민사소송에도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했고,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은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을 독촉하며 ‘내 일인양’ 챙겼다.
이 같은 협력의 결과였던지 정부는 2015년 12월 본래 계획대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하게 됐다. 외교부도 “일본 기업에 배상책임을 부과할 경우 한일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2016년 11월 제출했다. 재판은 재상고 5년이 지난 아직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거래 ‘판짜기’를 주도했다고 의심한다. 실제 청와대는 전범기업 측 소송을 대리한 김앤장 측을 여러 차례 접촉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앤장 측 강제징용 소송 TF의 고문을 역임했던 윤병세 전 장관이 2013년 3월 외교부 장관에 임명됐고, 김앤장 출신 곽병훈 변호사는 2015년 2월 법무비서관에 임명된다. 김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회동이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며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챙겼다는 진술도 검찰은 확보했다.
정부 측 서면 써주고 박근혜 비선 재판 챙기기도
강제징용 소송을 챙기는 동안 행정처는 시국 사건에서 재판 당사자가 써야 할 재항고 이유서를 직접 작성해 주며, 박근혜 정부의 전국교직원보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화 작업을 도왔다. 당시 서울고법은 전교조가 정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처분 집행정지신청을 받아들였지만, 2015년 6월 대법원이 정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이면서 전교조는 다시 법외노조가 됐다.
그런데 이 같은 판단의 원인이 된 재항고 이유서는 재판 당사자였던 고용노동부가 아닌 행정처가 작성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법원이 집행정지신청을 인용한 직후 2014년 10월 고용부가 제출한 재항고 이유서가 다름아닌 임 전 차장의 컴퓨터에서 작성된 것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문건은 다음날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고용복지수석실을 거쳐 고용부에 전달됐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제출됐다. 법원이 재판 당사자에게 서면을 써 주고, 바로 그 서면을 근거로 ‘셀프 결정’을 내리 셈이다.
검찰은 재항고 이유서 대필이 상고법원 도입 등 반대급부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검찰은 “재항고가 인용될 경우 상고법원 입법 추진 등 협조를 요청할 만 하다”고 분석한 행정처 문건을 확보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에도 “전교조 가처분 인용-잘 노력해서 집행정지 취소토록 할 것”이라는 청와대의 재판 개입 의지가 드러났다.
검찰은 청와대와 행정처가 도출한 모종의 합의가 당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유해용 변호사를 통해 대법원 재판부에 전달됐을 것으로 의심한다. 검찰은 이미 옛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한 전합 회부 검토 문건이 유 변호사를 통해 대법원 재판부에 전달된 정황을 확보했다.
유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김영재 원장 측의 특허소송 관련된 정보를 불법 수집해 청와대 측에 전달한 인물이기도 하다. 재판 관련 자료 외에도 상대를 대리하던 법무법인의 수임내역 등까지 임 전 차장을 통해 청와대로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최순실씨의 측근이기도 했던 김 원장 부부의 민원 처리에 고위법관들이 동원된 것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 ‘[사법농단 기승전결ㆍ3] 일선재판 지휘한 대법원 수뇌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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