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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유명 심리상담사, 그루밍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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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유명 심리상담사, 그루밍 성폭력”

입력
2018.09.21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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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최근 송치한 유명 심리상담사 김모(54)씨 성폭행 사건(본보 19일자 15면)에 대해 경찰이 ‘길들이다’는 의미의 ‘그루밍(Grooming)’ 성폭력으로 판단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이루어진 성폭력 행위라는 것이다. 앞서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가 무죄 선고 당시 피해자가 심리적 지배상태에 있지 않았다며 그루밍을 언급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김씨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다수 전문가들을 통해 김씨가 피해자 A씨를 심리적 지배했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폭행이나 협박은 없었던 것으로 미뤄봤을 때 A씨가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A씨는 본보에 “김씨가 요구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치료가 잘못돼 일상 생활로 못 돌아갈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에 가해자인 김씨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 즉 화간(和姦)이라는 주장을 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루밍 성폭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현행법상 화간과 뚜렷이 구분하기 어려운 회색지대가 많아 법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명희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목사이자 유명 심리상담사로서 권위를 가진 김씨 요구를 내담자(고객)인 A씨가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저항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의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심리적 지배 상태에서 벌어진 성폭력 행위라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려운 특성을 갖는다. 수년 간 교회 여신도 10여명을 성폭행한 혐의(상습준강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75) 목사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그루밍 성폭력’의 전형적인 예로 보고 있다.

더군다나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때조차도 혐의 입증이 어렵다. 그루밍 성폭력은 폭행이나 협박 등 강압이 없고,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종속된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도 연락을 취했던 점 등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16년 검찰은 심리치료를 하기 위해 상담소를 찾은 여성 2명과 수 차례 성관계를 가진 심리상담사에게 경찰이 적용한 준강간 혐의를 불기소 처분하기도 했다. 같은 해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10대 조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 B(38)씨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은 “교내 따돌림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던 피해자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해 호의를 베푼 후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에서는 증거만 가지고 판단할 뿐이라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행법상 불합리한 점 때문에 그루밍 성폭력의 경우 해외처럼 엄격한 제한을 가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콜로라도 등 미국 내 여러 주에서는 상담자가 내담자와 성관계를 맺은 것만으로도 그루밍에 의한 성적 착취로 규정하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최근 대법원이 성인지감수성을 갖추라고 주문하는 등 피해자 중심의 판결을 내리는 판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법적, 제도적 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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