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의 온상이었던 법원행정처(법원 내의 인사ㆍ재무ㆍ회계 등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조직)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가 주축이 된 사법행정 담당 기구를 신설하기로 했다. 또 사법부 개혁이 더디다는 국민의 지적을 받아들여, 사법 개혁에 좀 더 박차를 가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법원장은 20일 국민 및 법원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담화문을 통해 “앞으로 추진할 사법부 구조 개편은 법원의 관료적 문화와 폐쇄적 행정 구조를 개선하는 데에 집중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그는 “위계적 법원 조직을 ‘재판기관들의 수평적 연합체’로 바꾸겠다”며 “우선 여러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법관 중 한 명이 처장을 맡는 법원행정처는 형식상으론 법관의 재판을 지원하는 조직이지만, 실제로는 인사ㆍ예산권을 무기로 일선 판사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이 ▦수뇌부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하거나 ▦사법부 이익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하고 ▦실제로 일선 법원의 재판에 관여한 정황이 대법원 자체 조사나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김 대법원장의 개혁 조치에 따라 1949년 법원조직법 제정 때부터 설치된 법원행정처는 약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대신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가칭)에 사법행정권을 넘기기로 했다. 또 사법행정 실무는 법원사무처와 대법원 사무국이 맡도록 할 예정이다. 법원사무처는 대법원 건물 밖으로 이동시켜 공간을 분리하고 상근 법관을 두지 않기로 하기로 했다.
김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사법농단의 실상과 관련해 “국민과 법원 가족에게 거듭 반성과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또 “개혁의 속도와 성과가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앞으로 더 신속하고 내실 있는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울러 그는 이날 담화에서 “국민들은 분쟁의 마지막에서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법원을 찾는다”며 “법원에 대한 믿음이 깨질 때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의 크기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양승태 사법부가 정권과의 재판 거래를 통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조직의 이익에 따라 재판을 한 게 아니냐는 일반 국민의 여론을 상당 부분 수긍하면서, 우회적으로 사법농단 사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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