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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기 위해… 수컷의 눈물겨운 ‘정자 경쟁’

입력
2018.09.22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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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댕기해오라기가 좋은 먹이 터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검은댕기해오라기가 좋은 먹이 터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자연계에는 모든 동물이 공평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먹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언제라도 배우자를 만나서 번식할 수 있는 장소가 널려 있지도 않지요. 때문에 동물들은 이러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포유류는 배설물이나 발톱자국, 울음소리로 자신의 영역을 나타내고, 조류나 양서류는 대부분 울음소리와 과시행동으로 자신의 영역을 선언하거나 과시합니다. 곤충들도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개체를 쫓아 버리지요. 이렇게 개체 간 경쟁에 의해 설정되는 영역을 세력권이라고 하는데요. 이 세력권은 집단 간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력권 내에 다른 개체들이 침입하면 즉각적으로 과시행동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죠.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또는 배우자를 만나서 둥지를 틀고 번식하기 위해서 방어를 하는 게 세력권을 형성하는 이유입니다.

멧새는 동종의 다른 개체들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에서 자신의 세력권을 선언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멧새는 동종의 다른 개체들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에서 자신의 세력권을 선언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한정된 먹이와 번식지를 둘러싼 경쟁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는 동물의 먹이가 풍부한 장소가 있는 반면 먹이가 별로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 처음으로 먹이를 찾으러 온 개체는 먹이가 가장 많은 장소로 가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 다음에 찾아온 개체는 어디로 갈까요? 만일 먼저 온 개체가 쫓아내지 않는다면, 나중에 온 개체도 그 장소로 갈 겁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서 온 개체들도 모두 이 장소에 모이면 먹이가 급속히 감소하기 때문에, 처음엔 먹이를 찾기 좋은 장소였지만 나중에는 점점 나쁜 장소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곳보다 먹이가 풍부하지 않았던 장소에 처음으로 가는 것이 더 많은 먹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두 장소에서 먹이의 양과 각 개체가 얻는 이익이 동등하게 됩니다.

만일 개체 간에 경쟁이 일어나 나중에 오는 개체를 먼저 온 개체가 쫓아낸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첫 번째 도착한 개체는 먹이가 가장 많은 장소로 가고, 두 번째 도착한 개체는 첫 번째보다 좋지 않은 장소로 가고, 세 번째 도착한 개체는 두 번째보다 좋지 않은 장소로 가겠죠. 나중에 오는 개체는 점점 나빠지는 장소를 찾다가 결국에는 먹이가 전혀 없는 장소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개체는 떠돌이가 되어 먹이도 구하지 못하고 번식마저 못한 채 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서술한 먹이 터와 달리, 번식 세력권은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고 둥지를 틀고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서 설정합니다. 여기에 다른 수컷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암컷이 들어오는 데는 매우 관대하죠. 본처가 다른 암컷이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세력권 내에는 다수의 암컷이 정착할 수도 있습니다. 휘파람새의 어떤 암컷은 본처 몰래 들어와 교미만 하고, 본래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세력권은 어느 정도 면적을 확보하는 것이 좋을까요? 좋은 장소는 침입자가 너무 많아 방어하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고, 나쁜 장소는 방어에 소요되는 비용이상의 가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체들은 세력권의 면적을 결정할 때 잠재적 침입자의 수, 먹이 자원의 양, 배우자의 선호도를 모두 고려하여 결정합니다. 이렇게 설정된 세력권은 먹이와 배우자를 둘러싼 개체 간의 무익한 싸움을 피하고, 개체 또는 둥지를 분산시켜 과밀한 생활을 방지하며 먹이확보 및 번식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기능을 합니다. 반면 알이나 새끼의 포식자에 대항하기 위해서 ‘콜로니’(집단)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나 백로류의 세력권은 둥지를 중심으로 반경 수㎝에 불과합니다.

꼬마물떼새 두 쌍이 깃털을 세우고 자신들의 번식세력권이라고 선언하며 대치하고 있다. 결국 한 쌍이 다른 쌍을 쫓아 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꼬마물떼새 두 쌍이 깃털을 세우고 자신들의 번식세력권이라고 선언하며 대치하고 있다. 결국 한 쌍이 다른 쌍을 쫓아 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다부다처제에서 나타나는 정자경쟁 

동물들은 번식세력권 외에도 자신의 정자로 암컷의 난자를 수정하려는 정자경쟁도 치열하게 벌입니다. 조류 암컷의 수란관(나팔관)에는 정자를 일정기간 동안 보관하는 저정선(sperm storage tubule)이 있습니다. 조류의 저정선 내에서 정자의 생존기간은 포유류보다 2~3배 길죠. 만일 조류의 암컷이 가임기간(암컷의 난자가 수정 가능한 기간)에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하면, 저정선 내 정자 간의 경쟁이 벌어지고 그중 한 개의 정자가 한 개의 난자를 수정시킵니다. 두 개체 이상의 수컷으로부터 유래한 정자가 한 개체의 암컷 난자와 수정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정자경쟁(sperm competition)이라고 합니다.

정자경쟁은 일부다처제 또는 일처다부제보다 다부다처제(난혼제)인 종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다부다처제인 종은 정자경쟁에 이기기 위해서 수컷이 몸의 크기에 비해 고환의 크기를 발달시켰습니다. 덩치가 150~180㎏에 달하는 수컷 고릴라는 한 마리의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독점하는 일부다처제로, 고환의 무게가 30~35g 가량입니다. 반면 다수의 수컷이 각각 발정한 암컷과 교미를 하는 다부다처제의 침팬지는 40~60㎏로 덩치는 작지만 고환의 무게가 120g이나 됩니다. 인류학과 생물지리학에 정통한 학자인 알렉산더 하코트에 따르면 일처다부제인 고릴라는 침팬지와 달리 정자경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수정을 확실히 하는 데에만 주력하면 됩니다. 반면 침팬지 정자의 역할은 암컷의 몸에서 경쟁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다부다처제인 바위종다리 수컷도 번식기가 되면 총배설강 주변에 직경 1㎝의 정자주머니가 만들어집니다. 다른 조류 종 가운데서도 이 정도의 크기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는데요. 바위종다리 수컷의 정자주머니도 여러 암컷과 교미를 하고, 암컷의 몸 속에서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도록 크게 진화된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조류 중에서는 암컷의 가임기간 동안 수컷이 암컷을 강하게 방어하는 종은 교미횟수가 적은 반면 배우자 방어를 느슨하게 하거나 또는 하지 않는 종, 그리고 콜로니로 번식하는 종은 교미횟수가 많습니다. 배우자 방어란 외적으로부터 암컷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수컷으로부터 혼외교미를 못하도록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배우자 방어가 완벽하지 않거나 암컷이 따라다니는 수컷으로부터 도망쳐서 다른 수컷과 교미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컷의 배우자 방어의 목적은 자신이 태어나는 새끼의 아비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깝작도요가 좋은 먹이 터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깝작도요가 좋은 먹이 터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일부일처제의 조류에서 가임기간에 배우자를 방어하는 제비 수컷은 체중이 12%나 감소를 하는데요. 반면 물수리, 참매와 같은 맹금류나 괭이갈매기와 같이 콜로니로 번식하는 조류는 배우자 방어를 느슨하게 하거나 교미횟수를 증가시켜서 부성을 지키려고 합니다. 암컷의 저정선에 많은 정자를 넣고, 설령 혼외교미가 있더라도 정자의 압도적인 양으로 부성을 지키겠다는 전략이죠. 맹금류의 암컷은 주로 둥지에 있고, 수컷이 둥지재료나 암컷과 새끼의 먹이를 운반합니다. 콜로니로 번식하는 종은 둥지재료를 다른 개체로부터 빼앗기지 않도록 배우자가 교대로 둥지를 지키고, 먹이도 번식지로부터 먼 곳으로 찾으러 갑니다. 이러한 생태적 요인에 의해서 교미빈도가 증가된 것이죠.

검은물잠자리 수컷(오른쪽 위)이 배우자 암컷(오른쪽 아래)이 수초에 산란하는 동안 다른 수컷(왼쪽 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면서 다른 수컷이 접근할 때마다 계속해서 쫓아 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검은물잠자리 수컷(오른쪽 위)이 배우자 암컷(오른쪽 아래)이 수초에 산란하는 동안 다른 수컷(왼쪽 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면서 다른 수컷이 접근할 때마다 계속해서 쫓아 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부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 정자치환 

암컷의 체내에 먼저 들어 있는 수컷의 정자를 나중에 교미한 수컷이 물리적으로 제거해 버리는 것을 정자치환(sperm displacement)라고 합니다. 이것은 잠자리류에서 잘 나타납니다. 잠자리 수컷의 교미기(페니스)는 복부 부근에 있습니다. 교미기 끝부분의 양쪽에는 가시가 있고, 그 가시에는 솔과 같은 것이 붙어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교미한 수컷의 정자를 꺼내고 자신의 정자를 주입하기에 적합한 구조입니다. 검은물잠자리는 흐름이 약한 냇가 가장자리나 호수의 수생식물이 있는 곳에서 산란합니다. 수컷은 이러한 장소에 대기하다가 산란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암컷과 교미를 합니다. 검은물잠자리의 교미시간은 2~3분에 불과하지만, 교미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 대부분의 시간은 안에 있는 정자를 긁어내는데 소비합니다. 그리고 정자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마지막 10여초입니다.

일본에 서식하는 야행성인 날다람쥐는 다수의 수컷과 암컷이 서로 교미하는 난혼제입니다. 수컷은 암컷과 교미 후 항문 양옆의 쿠퍼 샘에서 나오는 반투명의 바세린 물질을 암컷의 음경에 방출합니다. 이 물질은 비누 정도의 경도로 굳어지므로 액상인 정자가 유실되는 것과 다른 수컷의 수정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수컷은 비누 정도의 경도로 굳어진 ‘교미마개’를 뽑고 다시 교미합니다. 1990년 6월, 필자가 다니던 오사카시립대 동물사회학연구실 카와미치 타케오(川道武男) 조교수를 따라 날다람쥐 조사지인 교토의 사찰림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번식기라 어둠 속에서 날다람쥐의 울음소리와 나무를 타는 소리로 북적거렸습니다. 고목 아래에는 일그러진 촛농 같은 교미마개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카와미치 교수는 수컷의 교미기가 코르크 병따개 모양으로 생겨서, 교미마개를 쉽게 뽑는 기술을 가진 수컷이 부친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동물의 수컷은 자신의 배우자가 다른 수컷에 의해서 혼외교미를 하지 않도록 하고, 자신의 부성을 높이기 위한 정자경쟁이나 정자치환에서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연 상태에서든 실험에서든 조류나 곤충의 가임 기간 동안 암컷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수컷과 교미했을 경우 마지막에 교미한 수컷의 수정률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암컷이 산란하기 직전에 교미하는 수컷이 단연 유리한 것입니다.

김창회 국립생태원 생태조사연구실 연구지원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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