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가 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을 벌여 18명을 죽였다. 유일한 생존자인 ‘나’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그러나 그리 될 리 없다. “너 그 학교 학생 맞지?” “어떻게 알아요?” “유명한 교복이잖아.” 공사장, 영화관 할 것 없이 어디서나 반복되는 대화다. 상담을 맡은 정신과 의사는 누가 건드리면 전화로 대신 욕해주겠다며 명함을 건넨다. 그러려면 “떠돌이 개와 새, 고양이의 꿰뚫어보는 눈빛에도 명함에 적힌 전화를 불러주어야 했다. 죽은 애들은 더 이상 겪을 수 없는 5월, 6월, 7월로 넘어가는 달력에도 명함을 붙여야 했다. 오늘은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부모님의 말투에도 (중략) 나는 오빠가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 파이팅!이라고 여동생이 써준 편지에도” 명함을 내밀어야 한다.
번외
박지리 지음
사계절 발행ㆍ160쪽ㆍ1만1,000원
제57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인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의 작가 박지리의 유작이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전에 쓴 원고인데, 참사 생존자의 심리 묘사가 빼곡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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