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아프게 낳아준 것도 너무 미안한데, 또 다시 오갈 데 없는 상황이 생길까 봐 너무 두렵습니다.”
상도유치원 학부모 A(36)씨는 매일 대통령에게 편지를 띄운다. 이메일을 통해 보내는 거라 대통령이 직접 확인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장애를 가진 딸 유라(가명)가 무너진 유치원 터로 등원하겠다고 아침마다 떼를 쓰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어서다.
6일 붕괴 사고 이후 유치원은 그나마 인근 상도초등학교 건물로 옮겼다. 그런데 유라가 있던 누리반(특수교육)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유라와 같은 누리반 학부모 B(37)씨는 “재난 상황에서 장애 아동은 늘 뒷전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치원건물 붕괴에 이어 반 해체까지 사고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두 번 울리고 있는 셈이다.
누리반이 사라진 표면적 이유는 공간 부족. 상도유치원은 정규학급(비장애) 6개와 누리반 1개를 운영해 왔는데, 상도초에 ‘더부살이’ 하면서 교실을 6개만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수 아동의 개별화 교육을 할 공간부터 없앴다. 유치원 측은 “교실 일부에 칸막이를 설치해서라도 공간을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기약하지 않은 상황이라 언제 지켜질지 알 수 없다.
학부모들은 장애 아동들에겐 개별화 교육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한다. 장애ㆍ비장애 유아가 함께 생활하며 편견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통합교육’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장애 정도가 다른 아이들 수준에 맞추는 개별화 교육도 매일 해야 한다는 게 이들 얘기다. 예컨대 개별화 교육 시간에 상대방의 말을 알아는 듣지만 대답이나 표현을 못 하는 아이에게는 양자택일 버튼을 만들어줘 그것을 누르게 한다. 실제 상도유치원은 그간 장애 아동 5명이 1명씩 정규학급에 속해 통합교육을 받고, 하루 1~2시간씩 누리반에서 개별화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누리반이 사라지면서 장애 아동들은 자신들 입장에서 비장애 친구들과 가까워질 기회를 잃게 됐다. 통합교육 시간에 다른 친구와 의사소통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누리반에 정규학급 친구 4명 정도를 불러 소그룹 수업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불가능해서다. 게다가 옮겨간 상도초 건물은 교실과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배변 교육에 어려움이 많다.
유치원을 옮기면 될 일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학부모들은 다른 기관으로 옮겨주겠다는 이창우 동작구청장의 제안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원래 만나던 친구와 선생님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B씨는 “장애 아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퇴짜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상도유치원 정상화가 저희에게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호소했다.
아래는 상도유치원 누리반 학부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상도유치원 누리반 ooo 엄마입니다.
상도유치원은 장애통합유치원으로 누리반은 특수학급반명이지요. (중략)
이번 상도유치원 붕괴 사고를 떠올릴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납니다. 아프게 낳아준 것도 너무 미안한데.. 이런 고통과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는 또다시 오갈데 없는 상황을 만들어 줄까봐 두렵습니다.
장애통합 어린이집이라고 해서 대기 걸어 순번이 왔다고 연락이 오면 하나같이 다 거절하시더라구요. 특수학급 선생님이 부족하다. 자리가 없다...그렇게 거절할거면서 연락은 왜 해서 상처를 주는지... 그런 상황에 유치원을 지원하게 되었고 상도 유치원에 진짜 어렵게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 역시 자리가 너무 없기 때문에 경쟁률이 엄청 높습니다. 거주지 우선으로 저희 아이가 상도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이집들 대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유치원 선택을 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차별 없이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친구들, 선생님, 학부모님들... 그리고 하나하나 배우며 느리지만 늘어가는 우리 아이의 행동들을 보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9월 6일 밤 11시30분경...
유치원 붕괴로 괴로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진짜 거짓이며, 합성사진인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방송에 사고현장이 나오면서 심장이 터질듯하며 온몸이 떨리며... 저 사고가 밤이 아니라 낮이었으면... 끔찍했습니다. 너무나도 고마운 우리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아이도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눈물만 흐릅니다. 혹여나 낮에 일어났다면 저희 아이는 빠져나올수도 없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 미안하고 가슴이 메어집니다.
유치원이 다시 정상화가 빨리 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누리반 학급은 다른 통합 유치원이라고 할지라도 자리가 없습니다. 현재 임시적으로 상도초에서 수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중략) 저희 아이는 상도유치원이 사라진다면 그 좁은 배움의 길도 중단될 것입니다. 갈 곳을 잃을 것입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제발 상도유치원을 빠른 시일내로 그대로 옮겨주세요. 아이들도 선생님도 환경도.
왜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불편함은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건가요. 왜 겪지 않아도 되었던 고통을 아이들과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겪어야 하나요. (중략) 대통령님, 총리님, 시장님, 구청장님, 교육청장님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미 사고는 터졌습니다. 되돌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빠르게 방안을 내주시고 자기 잘못 미루기보다 해결을 해주세요. 내 아이가 저 유치원에서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해결하셨겠습니까? 저 사고가 낮에 일어나서 인명피해가 일어났다고 해도 이렇게 해결하셨겠습니까?
정말로 9월 10일 오후 7시 총회에 다녀와서 저희가 믿고 살아야 하는 구청 시청 이나라에 너무 큰 실망을 했습니다. 듣기 싫은 얼굴로,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얼굴로 "검토하겠습니다, 회의해보겠습니다,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 때문에 그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똑같이 그 행동을 반복하는 분들을 보고...
남들이 한국에서 살기 싫다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 싫다 라고 할 때도 크게 공감 못했었습니다. 이제는 공감이 갑니다. 카메라가 있어서 보여지기 식으로 현장 방문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서 현장 나오셔서 학부모 목소리 아이들 목소리 들어주시고 빠른 해결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저희 상도 유치원 빠르게 정상화 시켜주세요. 정말로 부탁드립니다. 진짜 대통령님 만나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나뵐 수 없다는 것 알기에 이렇게 글이나마 전달되길 간절히 바라며...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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