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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숫자 뒤의 함정

입력
2018.09.19 18: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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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확해 없애려다 부활한 가계동향조사

응급실 한정해 구멍 뚫린 온열질환 집계

통계가 현실 잘 반영하는지 늘 자문해야

많은 사람들은 로버트 맥나마라를 베트남 전쟁기 미국 국방장관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 말고도 독특한 이력과 업적이 많은 관료이자 기업인이었다.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 출신으로 육군 근무를 거쳐 포드에 입사한 그는 포드의 기업구조와 마케팅 혁신을 주도해 44세에 포드 가문 외 인사로는 처음 사장직에 올랐다. 포드 전 차종에 안전벨트를 도입한 것은 자동차 역사에 남는 아이디어다. 케네디 정부에서 국방장관에 발탁돼 효율성 중시의 경영학 기법을 적용한 예산 편성 등으로 국방부 개혁에도 앞장섰다. 국방장관 7년 재임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런 그가 베트남 전쟁기 국방장관으로만 각인된 이유가 있다. 그토록 통계와 숫자를 중시하다 오판을 해 결국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다. 맥나마라는 전세(戰勢)의 ‘계량화’를 위해 전방에서는 적군 사망자 숫자를 보고하게 했고, 중앙정보국(CIA)에는 전담반을 설치해 폭격기 출격 위치와 횟수, 투하 폭탄, 수량 등을 분석했다. 시도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문제는 부대에서 성과를 부풀리려고 적군 사망자 숫자를 과장 보고했다는 데 있었다. 이를 의심하지 않았던 맥나마라는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가계동향조사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표본을 바꾼 최근 결과가 그 전과 비교 가능한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에서 통계청장까지 교체해 정부가 통계 조작을 시도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통계청 발표가 그렇게 엉터리인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통계쯤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논란에서 그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한계가 많아 폐지하기로 했던 가계동향조사가 예산이 몇 배로 불어나 되살아난 대목이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작성이 목적이던 가계동향조사는 조사대상자의 불성실한 답변 등으로 오래 전부터 정확성을 의심 받아왔다. 불성실해서만이 아니라 사업ㆍ금융소득은 애초 조사대상자가 자신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근본 문제를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소득 전체를 파악할 기회인 종합소득세 신고나 연말정산은 1년에 한 번인데 분기마다 조사하니 부실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위권이던 한국의 지니계수가 갑자기 하위권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통계청이 기초 데이터를 가계동향조사에서 연간 조사인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꾼 2013년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떨어진 수치가 현실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정책을 펴거나 연구하시는 분들의 요구가 크다”며 되살리겠다니, 부실한 통계 조사로 부실한 정책과 연구를 돕겠다는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

별로 주목 받지 못하고 있지만 시급히 개선해야 할 통계가 또 하나 있다. 온열질환 사망자 숫자다. 생사와 관련된 것이니 가계동향조사보다 당연히 중요하다. 사상 최대 폭염이었다는 지난 여름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온열질환 사망자 숫자는 모두 48명이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7, 8월 두 달간 사망자 숫자는 4만8,876명으로 과거 10년간 7, 8월 사망자 평균보다 무려 7,060명이 많았다. 갑자기 이 정도로 사망자가 늘어날 원인으로 폭염 말고 떠오르는 게 있는가.

질병관리본부 발표는 온열질환 감시체계를 통해 전국 500여 개 응급실에서 온열질환으로 진단 받은 사망자 숫자만을 모은 것이다. 온열질환이 겹쳤지만 지병이 주요 사망원인으로 진단되었거나 응급실에 오지 못한 경우 등 누락이 생길 수 있는 구조다. 올해 같은 폭염이 일상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온열질환 사망자 집계는 폭염에 대한 경각심이나 대책 수립 소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가 갈수록 중요해진다고 한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통계를 생산하려는 노력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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