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첫 회의가 열린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집중한 의제는 예상대로 한반도 비핵화 실천 방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방북 전부터 ‘북미 대화 재개’를 핵심 방북 목표로 거론했기 때문이다. 여전한 대북 제재 탓에 어차피 남북 경제협력 논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실무회담에서 대부분 합의한 군사 긴장 완화 방안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별로 없는 상태였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평양으로 떠나기 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참모들에게 “남북이 자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정례화를 넘어 필요할 때 언제든 만나는 관계로 넘어가고 있다”며 “이번 방북으로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협상 테이블을 다시 마련하는 일에 공을 들이겠다는 얘기다. 앞서 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두 정상이 다시 마주 앉는다면 비핵화 문제가 빠른 속도로 진척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한 바 있다.
방북 전부터 북미 간 중재를 강조한 사실로 미뤄 문 대통령은 지난달 예고됐다가 연기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제4차 방북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안으로 가시권에 들어온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김 위원장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미 요구대로 핵무기ㆍ핵물질ㆍ핵시설 등의 목록을 신고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육성 확약을 받아내는 것이지만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물질 생산 시설의 동결이나 불능화 약속도 대미 타협안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비핵화만 추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윤 수석은 이날 정상회담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회담에서 의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허심탄회한 대화 방식이 될 것”이라며 “1, 2, 3번 식으로 의제의 순서를 정해 대화하기보다는 비핵화와 (군사) 긴장 완화, 남북관계 개선 등 의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합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전날 평양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비핵화 의제와 관련해 “구체적 진전에 대한 합의가 나올지 그런 내용이 합의문에 담길지 구두 합의가 이뤄져 발표될지 모든 부분이 블랭크(빈칸)”라고 했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서울공항 환송 행사에 참석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대대표 등과 만나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는 것 자체가 성과인데 만날 때마다 성과 보따리가 있어야 되는 것으로 인식돼 조금 부담스럽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령 설득이 통했더라도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최종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논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남북이 공표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남북 경협 논의는 가능성을 살피는 수준에 머물렀을 듯하다. 윤 수석은 “이번 만남에서 현실적으로 당장 (경협이) 가능한 영역보다는 미래 가능성 타진이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했다. 군사 긴장 완화 의제의 경우 실무회담 합의를 매듭 짓는 차원의 의견 교환 정도가 필요했으리라는 게 윤 수석 얘기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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