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독일 정보당국 수장이 결국 해임됐다. 최근 독일 사회를 뒤흔든 ‘켐니츠 반(反)난민 폭력 시위 사태’와 관련, 극우세력에 대한 옹호성 발언을 했다는 이유다. 독일 내 인종주의 및 난민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이제는 ‘정보기관 총수 교체’라는 정치 사태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18일(현지시간) 독일 일간 디 벨트 등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열린 대연정 참여정파와의 위기 대책회의에서 국내정보 담당 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의 한스-게오르크 마센 청장의 해임을 결정했다. 디 벨트는 전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메르켈 총리가 이미 마센 청장 경질의 뜻을 굳힌 상태라고 전한 바 있다. 다만 대연정 일각의 반발을 감안한 듯, 마센 청장에게는 내무부 차관의 지위가 주어졌다. 이론적으로는 승진인 셈이다.
2012년 8월부터 6년 넘게 재임 중인 마센 청장을 해임으로 내몬 배경은 최근 독일 동부의 소도시인 켐니츠에서 발생한 유혈폭력 사태다. 지난달 26일 켐니츠 거리 축제에서 발생한 다툼 끝에 한 독일인 남성이 숨지고 용의자로 이라크ㆍ시리아 출신 남성 2명이 체포되자, 격분한 극우주의자들이 이튿날 대규모의 폭력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대가 이민자를 쫓아가 폭행하는 모습들이 담긴 이른바 ‘켐니츠 인간사냥’ 동영상이 공개돼 파장이 일었으나, 마센 청장은 “영상은 허위 정보에 기반한, 조작된 가짜뉴스일 수 있다. ‘인간사냥’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다”면서 극우 시위대를 감쌌다. 그러나 이후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대됐고, 대연정 내 소수파인 사회민주당(SPD)과 야권이 ‘마센 청장 해임’을 거세게 요구하고 나섰다.
마센 청장이 ‘극우’ 세력과의 연관성으로 구설에 오른 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BfV의 감시망을 피하는 법’을 조언해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올해 6월에도 슈테판 브란트너 AfD의원이 “사적 만남에서 내게 많은 보고서를 건네줬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해 위기를 넘겼지만, 이번에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대연정 파트너이자 난민 강경파인 호르스트 제호퍼 기독사회당(CSU) 대표 겸 내무장관이 해임을 강력 반대하면서, 마센 청장은 내무부 내 새로운 직위를 얻게 됐다. 독일 관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대연정 내 마센의 사임을 요구한 사민당과 마센을 지지한 제호퍼 사이에서 메르켈 총리가 타협안을 내놓은 셈”이라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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