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낚시하는 4시간 동안 배 위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였어요.”
금어(禁漁)기간이 풀린 첫날인 1일. 친구와 함께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항한 낚싯배에 승선한 직장인 이다예(29)씨는 선상 술잔치에 깜짝 놀랐다. 낚시꾼들은 뱃머리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펼쳐놓고 음주를 즐겼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거나하게 취한 낚시꾼들의 몸이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크게 휘청거렸다. 선장과 선원은 늘 있는 일인 양 본체만체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낚시꾼들은 낚시를 드리우고 담배를 피우다가 선체 아무데나 비벼 껐다. 보다 못한 이씨가 ‘꽁초를 그렇게 버리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상대방은 ‘어차피 배 안이 축축해서 불도 안 난다’는 식으로 답했다. 이씨는 “운항 중인 작은 배에 불이 나면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거 아니냐”라며 “일부 낚시꾼의 안전불감증에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했다.
이달부터 가을낚시철이 열렸지만 낚시업체와 낚싯배, 낚시꾼들의 안전의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15명이 숨진 낚싯배 전복 사고의 교훈을 1년도 안 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15일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항하는 낚싯배에 승선해 보니 출항 첫 단추부터 안전수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승선 전 육지에 있는 낚시업체 사무실에서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폰 번호 등 승선명부를 작성하게 되어 있지만, 막상 배에 오를 때는 명부를 작성한 사람이 실제 승선하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신분증 확인 같은 기본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승선명부는 해상 사고 시 보험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초자료다. 낚시관리및육성법에 따르면 낚시업자들은 승선자가 직접 명부를 쓰게 한 뒤 이를 신분증과 대조해야 한다.
승객들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했다. 이 배의 승선인원 44명 중 구명조끼를 갖춰 입은 사람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도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선장은 “구명조끼가 있으니 챙겨 입으라”는 방송조차 하지 않았다. 선원실에 널브러져 있는 구명조끼를 스스로 주섬주섬 챙겨 입었던 낚시꾼들도, 배가 출항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낚시하는 데 불편하다”고 조끼를 훌훌 벗었다. 지난 한 해 단속에 걸린 낚시어선의 법률 위반 행위가 구명조끼 미착용, 출항 또는 입항 서류미필, 정원 초과, 선내 음주 순인 걸 감안하면, 최근 낚시 행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7일부터 집중 단속에 나선 해경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낚시어선 이용객수가 2015년 291만명에서 지난해 414만명으로 증가 추세지만, 모든 어선을 단속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윤혁수 전 해양경찰청 차장은 “낚시업체나 선장 등이 경각심을 갖고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낚시꾼들 스스로도 안전을 지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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