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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수당 100원 달라는 게 지나친 요구인가요?”

입력
2018.10.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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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노동자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을 준비 중인 박정훈 씨는 “맥도날드는 감자튀김에 소금 뿌리는 높이까지 규정하는 회사지만, 배달원 안전장비를 개인별로 지급할지 공용으로 지급할지는 지점장 재량에 맡긴다”며 “직원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직원(점장)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류효진 기자
배달노동자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을 준비 중인 박정훈 씨는 “맥도날드는 감자튀김에 소금 뿌리는 높이까지 규정하는 회사지만, 배달원 안전장비를 개인별로 지급할지 공용으로 지급할지는 지점장 재량에 맡긴다”며 “직원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직원(점장)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류효진 기자

“요구가 참 소박하죠?”

단순했다. 기상 관측 사상 11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불볕 더위 속에 나온 대가 치곤 저렴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1인 시위까지 벌이면서 그가 요구한 건 폭염 수당 명목의 단돈 100원. 맥도날드 배달원인 박정훈(33)씨 얘기다. 그가 맥도날드에 추가로 요청한 사안은 △하의 유니폼 지급 △폭염특보 시 배달구역 제한 △하프 헬멧과 아이스스카프, 얼음조끼 제공 등이다. 특히 10일 가까이 이어갔던 그의 1인 시위는 기후 변화란 세기적 화두와 맞물려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현재 배달업 종사자 노조 ‘라이더 유니온’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만난 그는 “폭염에 배달 나간 동료가 가게 문 열고 들어오며 ‘이러다 죽겠다’며 혀를 내둘렀는데 이 동료가 갓 돌 지난 아이 아빠였다”며 “가장(家長)이 폭염에 쓰러지면 큰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도중, 1인 시위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배달 생활은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됐다. 비교적 시간 활용이 여유로웠던 ‘알바상담소’의 상담가로 일했던 그는 ‘4대 보험 적용’ 일자리를 찾았고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직영하는 맥도날드 합정메세나폴리스점에 지원하면서다. 배달 도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자유로운 가맹점 보단 책임을 지는 본사 직영점이 유리하단 판단 때문이다.

주 3일 출근에 하루 평균 7~8시간 근무하는 그가 받는 월급은 100만원 남짓. 최저시급 7,530원에 건당 배달료 400원이 붙은 값이다. 폭우와 폭설이 내리면 배달 한 건당 100원을 더 받는다. 그는 “추석 명절에도 시급이 똑같기 때문에 일하려는 사람이 적다”며 “공휴일은 이름처럼 공무원이 쉬는 날이고 취업규칙에서 이를 준용하는 일부 기업 노동자에게만 휴일”이라고 말했다. 작년 추석, 올해 설날에 출근했던 그는 이 기간 시그니처버거 또는 김 선물세트를 받았다.

그의 1인 시위는 ‘기상 악화 시 배달료 100원 인상’ 규정에 폭염도 포함시키고, 더위가 심할 경우 배달 주문을 중단시켜 달라는 요구였다. “많은 배달원이 한겨울보다 한여름에 일하기 더 힘들다고 하거든요. 휴가나 방학, 더위가 겹치면 배달 주문이 폭발하는데다, 헬멧에 청바지까지 착용하면 땀나는 건 해결이 안 되거든요. 폭설, 폭우, 폭염은 전부 노동 강도가 높은 상황인데, 이번 폭염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어요.” 그는 폭염 수당 요구에 대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박정훈씨는 ‘라이더 유니온’ 출범에 어려움도 있지만 뜻을 굽힐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류효진기자
박정훈씨는 ‘라이더 유니온’ 출범에 어려움도 있지만 뜻을 굽힐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류효진기자

8월까지 이어진 1인 시위를 보고 몇몇 배달원들이 연락을 해왔다. 그는 배달원들과 ‘라이더 유니온 준비모임’을 만들고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다. 현재 오픈채팅방 가입자는 50여명. 자신과 같은 본사 직접 고용 노동자 뿐만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인 가맹점 고용 노동자, 배달 건당 수수료만 받는 개인사업자(특수고용직)까지 아우르는 노조를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라이더유니온 출범일은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기일인 11월 13일이다. 그는 또 다양한 근로 형태의 배달원들로부터 의견을 수렴, 1인 시위 때 요구안에서 △산재보험 의무가입 등을 추가하고 △폭염 미세먼지 등 날씨 수당 지급 △기상 악화 시 작업 거부권 도입을 포함시켰다. “보통 특수고용직 배달원이 건당 수수료 3,000원을 받거든요. 최저임금 받는 고용직보다 수입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최소 시간당 4건 이상 배달할 때 가능해요. 신호위반이나 과속을 부추길 수 밖에 없는 데 신분이 개인 사업자라 사고 나면 기업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임금 체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사고를 예방할 수 없어요.” 신설 요구안에 ‘정부의 배달업 지침 제정’을 넣은 이유였다. 그는 “배달 대행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배달 노동 사각지대가 넓어졌다”며 “배달노동자와 배달업체, 정부 등의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의견 수렴과 더불어 강제성 있는 배달노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날씨 수당 없는 지금도 배달원 인건비를 감당 못해 주인이 직접 배달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수두룩하다는 반박에 대해 그는 “같이 일하는 직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안전과 직접 관련 있는 직종을 ‘영세’ 자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며 “자영업자들이 힘을 모아 프랜차이즈 회사, 배달 플랫폼 회사와의 갑을 관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더유니온 준비위원회가 지난달 6∼29일 국내 18개 배달대행업체, 6개 요식업체에 속한 배달부 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근무환경 설문조사 결과, 헬멧 등 보호장구를 개인별로 받았다는 응답자는 10명으로 18.1%에 그쳤다. 이를 환기시키기 위해 배달원에게 안전장비를 지급하는 소셜펀딩 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맥도날드는 그의 폭염 수당 요구에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본사에선 그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데다, 지점에서 받은 불이익도 없다. 어려움도 많지만 그는 뜻을 굽힐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제가 알바노조 위원장 출신인데, 1인 시위 기사가 보수 매체에서 보도되고 제 신상 터는 독자들도 생겼다”면서도 “개인적인 행동을 하기보다 노조 출범 후 요구안을 정리해 공식입장으로 전달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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