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교수, 국문학 논쟁에 반론
‘불우한 천재시인’ ‘이단아’, 심지어 ‘저항시인’ 이언진(1740~1766). 수식어가 좀 요란하다. 국문학계가 최근 부각시킨 조선 후기 스타 문학가라서다. 조선 후기의 사회적 잠재력을 높이 치는 이들은 연암 박지원, 담원 홍대용 등을 추어올렸다. 하지만 ‘그래 봤자 노론 명문가 후예로 성리학적 한계가 뚜렷했다’는 반론에 부딪혔다.
그 다음 제시된 카드가 이언진 같은 이들이다. ‘중인 역관’이란 출신은 계급성에서, ‘끝내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세상을 한탄하며 지은 글을 다 불태우고 27세에 요절했다’는 인생 스토리는 비극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억압적인 조선 말, 중인 신분을 떨쳐내지 못한 비운의 천재시인의 탄생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이런 시각에 제동을 거는 ‘국문학 논쟁을 통해서 본 조선 후기의 국가, 사회, 행위자’란 논문을 최근 발행된 일본비평 19호에 기고했다.
이언진을 가장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이는 박희병 서울대 교수다. 그는 ‘호동거실’에 남은 이언진의 시를 읽으면서 계급적 저항의식, 반체제 정신을 이끌어낸다. 이언진의 미학은 “정치학”이고 그 정치학이란 “근대로 향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주장으론 정병설 서울대 교수의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서울대출판부)이 있다. 조선 후기 한글 소설이 “내용상으로는 국가의 사상통제로 인해 천편일률적으로 유교지배 이념을 반영”했지만 유통 측면에서는 “18~19세기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소설이 수십만 권이 유통되는 혁명적 양상”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 두 주장에는 물론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론이 따른다.
이 논쟁에 김 교수는 내용을 떠나 조선을 “전제적 왕권이 관료제와 결합해 성리학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억압, 수탈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말하자면 국왕 개인의 ‘전제권력’, 그리고 여러 국가 기구가 지닌 ‘기반권력’이 남김없이 관철되는 국가가 조선이냐는 되물음이다.
김 교수는 반론을 제기한다. 가령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는 영조 역시 “가장 많은 역모 사건을 겪은 군주 중 한 명”이었고, 정조 또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어려웠기에 고도의 정치 게임을 벌여야” 했던 왕이었다. 심지어 정조가 했다는 ‘문체반정’조차도 그 대상은 사대부의 한문뿐이었다. 출판물 유통 또한 그렇다. 수십만 권의 책이 전국에 유통되려면 유통망이 있어야 하는데, 장시(場市)는 일제시대 때 본격적으로 발달해 1970년대 중반 정점에 달했다.
김 교수가 하고픈 말은 조선은 성리학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한 국왕과 관료들이 전국을 빈틈없이 통제하고 있는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라 “최소국가, 최소사회”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이 말은 “국가는 국가대로 개개인을 전면적으로 통제할 역량이 없고, 개인은 개인대로 조직화된 역량으로서 국가에 정면 도전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는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이 너무나 미약해 상업 발달 자체가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김 교수는 숱한 도적과 유민의 존재로 보건대 오히려 “‘조미아(동남아 산악지대 화전민)’에 비견할 만한, 국가권력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 곳이 조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큰 그림을 이렇게 그리면 이언진의 위치 또한 재조정돼야 한다. 국가가 전면 통제를 할 수 없으니 이언진 같은 이들이 나타나지만, 개인이 국가에 정면 도전하긴 어려우니 이언진 또한 혁명가로 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유교적 가치의 내면화다. 김 교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중인 출신 역관 문인 이언진이 기존 양반 문인들로부터 인정받고도 거듭 시도했다”고 말한다. 이언진이 알려진 것도, 그가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 했던 연암 박지원의 기록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언진에게서 읽어내야 할 것은 억압적 조선왕권을 상정한 뒤 저항이냐 순종이냐 이분법을 적용하는 게 아니다. 순응하기엔 차별적이었고 저항하기엔 동원할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처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권력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일이라기보다 권력을 우회라고 때론 전유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조선의 유교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 가능하다. 유교라 해서 반드시 “전제국가 정당화 이데올로기”인 것만은 아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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