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만 건너면 나도 당신에게 일자리 하나 찾아줄 수 있다. 그러니 한번 해 보시라.”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엘리제궁(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 개방 행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한 20대 청년 실직자의 푸념을 접하고는 이같이 말했다. 주변에 일자리는 널리고 널렸다는 뜻이었다. 적극적인 구직 노력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취업 의지가 별로 없는 게 아니냐’고 나무란 꼴이 됐다.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실업자들의 고민과 고통을 체감하지 못하는 쪽으로 비쳐지면서 현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부자 대통령’의 인식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AFP통신과 BBC 등에 따르면 이날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구직의 어려움을 호소한 청년은 25세의 정원사 지망생이었다. 그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계속) 보내지만, 아무런 답들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마크롱 대통령은 “당신이 의지와 의욕만 갖고 있다면”이라는 전제를 단 뒤, “내가 가 본 호텔과 카페, 레스토랑, 건설현장 가운데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그게 진실”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파리 남서부 몽파르나스에 가 보라. 쉽게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고도 제안했다. 희망 직종, 활동 분야와 관계없이 ‘업종을 바꾸면 된다’는 식의 반응만 보인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쓰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기대했을 법한 25세 청년은 “알았다. 고맙다”는 대답과 함께 ‘씁쓸한 악수’만 나눠야 했다.
이런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로 확산되면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하고 있다. 한 시민은 “프랑스의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꼬집었고, 다른 프랑스 시민은 “단지 30초 만에 어떻게 그처럼 심한 경멸과 공감의 결핍, 무지를 드러낼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AFP통신은 “투자은행가 출신으로서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애쓰는 마크롱에 대한 비판이 트위터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고 전했다. 현재 약 10%인 프랑스 실업률은 5%대인 네덜란드나 4% 미만인 독일, 5% 미만인 영국보다 훨씬 높으며, 특히 25세 이하 젊은 계층에선 4명 중 1명이 일자리가 없는 상태다.
마크롱 대통령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그는 경제성장을 위한 자신의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을 “게으름뱅이”로 부르고, 노조 시위대엔 “혼란만 부추긴다”고 비난해 좌파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바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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