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유민정(30)씨가 특수 마이크 양쪽에 붙어 있는 ‘고무 귀’를 마사지하고 있었다. 그런 뒤에는 귀이개로 고무 귀 이곳저곳을 만졌다. 3.3㎡(1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음실의 조명 2개와 카메라가 그를 비추고 있었다. 유씨는 “귀와 관련한 ASMR 영상의 인기가 좋아 귀에서 날 수 있는 새로운 소리를 찾는 중”이라며 “한의원에서처럼 귀에 침놓는 영상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니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씨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ASMR 동영상을 2013년부터 올려온 국내 ASMR 1세대 유튜버다. 현재 그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은 46만6,000명, 유씨가 지금까지 올린 ASMR 영상은 666개다. 그가 2014년 11월에 올린 귀 청소 ASMR 동영상은 조회 수가 400만회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4일 올린 ‘우디 고치기’ ASMR 영상은 1주일 만에 조회수가 30만회를 넘겼다. 우디는 유명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ASMR 영상은 크게 ▦특정 물체의 반복적인 소리 ▦사람이 입으로 들려주는 소리 ▦역할극으로 나뉜다. 두드리거나 긁는 소리, 속삭임, 채소 씹는 소리 등과 달리 역할극은 마사지, 귀 청소, 미용실, 병원 등 상황극을 통해 청각적인 자극을 유도한다. 역할극 ASMR을 주로 제작하는 유씨는 “영상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현장을 여러 번 방문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쓰는 말을 적어둔 뒤 관련 ASMR 영상 제작에 적용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연극 동호회에서 활동 중이다.
유씨는 “2년 전 카메라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괜찮아 잘 될 거야’란 말을 반복해 속삭이는 ASMR 영상을 올렸는데, 그걸 보면서 위로받는 것 같아 들어 많이 울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며 “이런 경험들이 편안하고 보살핌받는 느낌을 주는 소재 위주로 ASMR 영상을 계속 제작하는 데 힘이 됐다”고 말했다.
ASMR 영상 1편 제작에 보통 1주일가량 걸린다. 역할극을 위해 소품을 찾고 꾸미는데 3일, 촬영 1일, 편집 3일 정도다. 소리에 민감한 영상인 만큼 촬영 중 소품을 내려놓는 소리가 녹음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항상 푹신한 천을 바닥에 깔아놓는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지 몰라 촬영 전에는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자동차 소리가 섞여 들어갈 수 있어 한여름에도 모든 문을 다 닫고 에어컨을 켜지 않은 채 영상을 만든다.
유씨는 “ASMR 영상의 인기가 점차 커진다는 건 그만큼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신호”라며 “앞으로도 계속 영화 속 장면을 활용한 ASMR 영상을 만들어 많은 이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싶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