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개관전
파란색 유리 공을 어깨에 올린 높이 3m가 넘는 하얀 헤라클레스 석고상이 리조트 안에 등장했다. 선명한 파란 공과 거대한 하얀 조각상이 대조를 이루며 눈길을 끈다. 수십억 원대에 거래될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제왕’이라 불리는 미국 작가 제프 쿤스(63)의 ‘게이징 볼(Gazing Ball)’ 연작 3개 중 두 번째인 ‘파르네스 헤라클레스’다. 고대 그리스 시대 조각가 그리콘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대리석상을 모본으로 석고상을 만들고 그 위에 파란색 유리 공만 얹었다.
17일 인천 영종도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 내 전시공간 아트 스페이스 개관을 기념해 방한한 쿤스는 “역사적인 조각품을 소재로 과거 인물들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 작품을 만들었다”며 “우리는 대화나 경험 등을 통해 자신이 가진 잠재성을 끌어내는데, 관객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석고상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반사되는 파란 공 안에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모습과 관람공간이 오밀조밀 들어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신화 속 인물인 헤라클레스가 현재를 비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번이 네 번째 방한이라는 쿤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며 “미술도 그런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을 받아들인 후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흡수하고 어떤 감각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말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기념하며 축하하는 것은 사람인데, 이를 위한 수단이 예술”이라는 예술론을 펼쳤다.
다양한 이들과 영감을 주고 받겠다는 그의 철학은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는 공간들에 녹아있다. 그의 작품은 리조트, 백화점 등 상업시설 등에 주로 설치돼 있다. 한국에도 2011년부터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관에 그의 작품 ‘세이크리드 하트(Sacred Heart)’가 설치돼있다. 쿤스는 “리조트에서 재미있는 시간과 모험을 하러 왔다가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작품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감상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며 “대도시의 미술관에 가야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미술관 아닌 곳에서도 쉽게 작품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쿤스는 작품이 가장 비싼 현존 작가로 꼽힌다. 201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풍선개’는 당시 생존작가 미술품으로는 최고가인 5,800만달러에 낙찰됐다. 그는 “작품의 중요한 가치는 경제적 수치로 따지는 건 아니다”며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강아지, 하트, 꽃 등 일상적인 사물을 대형 조각물로 제작해온 그의 작품이 예술적인 요소보다는 오락적인 요소가 크다는 지적도 많다. 쿤스는 “사람들은 클래식은 중요하다 생각하고, 엔터테인먼트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예술은 우리의 감각이 뭘 할 수 있고, 뭘 경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현대미술은 가벼워진 게 아니라 우리의 잠재력과 경험을 연결해 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17일 개관한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는 개관 기념전 ‘무절제&절제’에서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김호득, 이배 등 유명 작가 4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쿤스는 “이번 전시를 통해 허스트를 비롯 한국 대표작가들과 작품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며 “관객들도 이 대화에 참여해 각자의 잠재력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종도=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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