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으로 이어왔던 ‘같이 살래요’를 마친 박선영을 만났다.
장녀로서의 책임감, 아버지의 황혼 연애와 재혼. 우유부단한 남편과 욕심 많은 시어머니까지. 현 시대의 가족 군상을 한 곳에 모아둔 듯 복잡한 관계의 중심에 서있던 박선하 캐릭터는 데뷔 23년차 배우인 박선영에게도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선하는 연기하기 힘든 역할이었죠. 감정의 진폭이 너무 크고, 상대하는 감정들이 복합적이었거든요.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도 보여줘야 하고, 남편과의 사랑 이야기나 시어머니와의 갈등,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그려야 하다 보니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촬영을 마친 지금 생각해 보면 배우로서는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처음에는 정말 부담스러웠거든요. 매일 오열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표현법에 감이 오지 않았거든요. 그럴 때는 감독님이나 선배님들께 많이 여쭤보면서 해답을 찾아갔죠.”
이처럼 오랜 고민이 묻어있는 작품이었던 만큼, ‘같이 살래요’를 마친 박선영은 더욱 시원섭섭한 마음이 크다고 입을 열었다.
“일단 모든 작품은 끝나고 나면 시원섭섭해요. 그래도 ‘같이 살래요’의 경우에는 마지막 회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면서 마무리를 지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저희 드라마가 현 사회의 많은 부분들을 보여드리려고 했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잘 마무리 된 것 같아요. 뭔가 아쉬우면서도 시원하고, 시원하면서도 섭섭하네요.(웃음)”
지난 9일 방송된 마지막 회에서 자체 최고시청률인 36.9%를 기록하며 호평 속 종영한 ‘같이 살래요’. 시청률 보증 수표인 KBS2 주말극답게 최근 부진하는 드라마 시장 속에서도 독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40% 벽을 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것 보다는 잘 나오는 게 촬영 하는 사람 입장에서 신이 나고, 방송국에서도 분위기가 다르다보니 잘 나오면 좋죠.(웃음) 저희 시청률이 기대했던 것 보다 높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아요. 물론 시청률에서 아쉬운 부분이야 다 있겠지만 40%의 벽을 못 넘어서 안타까운 것 보다는 저희 작품의 메시지가 더 잘 전달돼서 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 됐으면 좋았겠다 하는 마음은 있어요. 단순한 수치에 대한 아쉬움은 없고요. 대신 저희 드라마를 보시면서 행복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그거면 된 것 같아요.”
극 중에서 세 명의 동생들을 이끄는 장녀로 열연했지만 실제로는 막내라는 박선영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박선하라는 인물이 너무 공감됐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막내다보니 장녀라는 상황을 겪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배우로서의 책임감 등을 결부해서 캐릭터를 그렸죠. 그러다 보니 선하라는 인물이 너무 이해되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위치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살아온 선하라는 인물이 짠하고 불쌍했죠. 보시는 분들은 답답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너무 공감 되고 깊이 이해됐던 캐릭터였어요.”
이어 박선영은 박선하라는 인물이 실제 자신과 닮은 점도 많다고 덧붙였다.
“제 스스로 선하 같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배우 생활을 하다보니 책임감이 많이 생겼던 것 같고... 어렸을 때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뭔가 깨끗한 이미지를 잘 가져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편안해 진 것 같긴 해요. 누군가의 아내, 딸이지만 재미있고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조금 날카롭고 강박적인 것들에 저를 가뒀다면 지금은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거죠. 그런 지점이 극 중 선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서 연기했죠.”
극 중 선하가 그러했듯이, 자신을 가둔 울타리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연기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박선영은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여유가 생겼다”며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때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는 선배들의 말이 이해가 잘 안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왜 그랬는지 너무 알 것 같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저 역시 스스로를 가뒀던 한정된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여유가 생겼거든요. 또 어렸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이가 들면서 많이 알아가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여배우들의 연기 폭도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고, 연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같이 살래요’를 마친 박선영은 곧바로 새 영화 ‘남산 시인 살인사건’ 촬영에 돌입 할 예정이다. 영화 촬영을 마친 뒤에는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박선영의 연기 열정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계속 될 예정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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