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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생각하는 교육부, 백 년 가는 학술정책

입력
2018.09.17 11:0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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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는 항상 ‘생각하는 국가’여야 했다. 생각하지 않고서는 국가를 건설할 수도 또 유지해갈 수도 없었다. 기틀이 잡혔다고 관리감독 하는 모드로 젖어들면 발전이 정체되고 결국 망하곤 했다. ‘생각하는 국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기본이었던 것이다.

국가가 생각하는 존재라고 할 때 위정자만 생각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주권자인 시민 하나하나가 생각하는 주체다. 다만 그들은 생업 등의 이유로 국가 경영을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위임했다. 공직자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또한 정부가 관리감독 하는 것만으로는 존재의 이유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관리감독의 주체임을 자임하며 당당해 하는 정부 기관과 공무원이 적지 않다. 폐지나 축소 요구가 줄곧 제기되는 교육부가 대표적 예다. 물론 지난날에는 관리감독 하는 주체로도 충분했을 수 있다. 선진국을 모방하며 잘 쫓아가는 것이 바로 성장과 성숙이 되던 그러한 시절에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하는 주체만으로도 부족하다. 못 돼도 ‘생각하는 협의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어야, 그러니까 타국의 전범이어야 비로소 발전과 진보가 이뤄지는 단계에 접어든 지 꽤 되었기에 그렇다. 생각하고 협의하는 역량 없이는 선진국이 되기는커녕 현상 유지조차 난망한 일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인문사회학술 분야의 ‘백 년 가는’ 학술정책은 고사하고 더 늦기 전에 중단기적 학술정책이라도 수립해야 한다는 점도 교육부가 생각하는 협의체로 거듭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현재 인문사회학술 분야에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같은 기구가 없다. 다시 말해 인문사회학술 분야의 발전 전략 수립, 관련 제도 개선과 정책 개발 같은 학술정책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담당하는 기구가 없다. 교육부가 진즉에 생각하는 주체라도 됐더라면 적어도 한 세대 전에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우리의 인문사회학술이 일본에 밀리는 것은 차치하고 중국에까지 밀리는 일도 없었을 터다.

관리감독 하는 주체에게는 이러한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생각하는 협의체는 그 중요성에 깊이 공명한다. 관리감독의 대상은 과거와 현재이지만 생각의 대상에는 미래도 포함되어 있다. 하여 중장기적 학술정책의 수립과 이행이 국가 백년대계의 주축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그럼으로써 학술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대한 확고한 정책의지를 갖추게 되고 이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재정적 기반을 구축해가게 된다. 이를테면 ‘인문사회학술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통령 직속의 ‘국가학술위원회’를 설치하며, 인문사회학술 분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예산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학술지원 최저 예산제’ 등을 도입한다.

연구 지원 정책도 패러다임을 달리할 수 있게 된다. 프로젝트 수행을 대가로 대학이나 연구소를 끼고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존 패러다임 외에 국가가 직접적으로 연구를 지원하는 패러다임을 병행한다. 가령 ‘국가학술창고(National Academic Storage)’의 구축이란 정책 목표 아래, ‘국가학술연구교수’ 제도를 시행하고 이들이 소속된 ‘국가인문학술연구원’을 설립함으로써 연구자 풀(pool)을 충분하게 갖춘다. 전 세계 유교 자료의 집대성과 결정판을 노리는 중국의 유장(儒藏) 사업처럼 ‘국가학술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로서 인문학 발전과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미국의 국립인문재단(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같은 재단도 설립한다. 국가가 연구‘자’, 연구‘자료’, 연구‘비’를 풍요롭게 갖춰놓고 대학이나 연구소 또 민간부문에서 이를 가져다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고등교육의 획기적 혁신도 일궈갈 수 있게 된다. 학술정책은 고등교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 개혁은 대학 개혁이 핵심이다. 이는 대입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지만 사실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대입이 고등교육을 초등, 중등교육과 연계해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면, 4차 산업혁명과 초고령화 사회 등으로 대변되는 산업구조, 인구구조, 문명조건의 변이는 고등교육이 평생교육의 주역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등-평생교육’ 생태계의 21세기적 재구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국력에 걸맞게 서울대 같은 중추대학을 하나 더 육성하는 과업(two core university project), 유아-초등-중등교육의 종국(終局) 교육기지인 현 대학체제에 고등교육형 평생교육기지의 성격을 결합한 ‘두 겹의 대학체제(double university system)’를 구축하는 과업 등을 수행해야 한다. 관리감독 하는 주체에 머무는 한 이 모두는 굳이 안 해도 태평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그렇기에 한낱 귀찮은 일에 불과해 보일 테지만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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