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관(前官) 인사와 관련한 비리 혐의가 제기되면서 한국 정부가 “선거부패를 수출한다”는 국제적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민간기업 미루시스템즈(미루)가 오는 12월 대선을 앞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 터치스크린투표시스템(TVS)을 수출키로 한 게 문제의 발단이다. TVS가 부정선거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는 국제적 우려가 잦아들지 않는 데다, 우리 선관위가 선관위 사무총장 출신인 김용희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사무총장을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 하면서 우리 정부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16일 선관위의 ‘A-WEB 국제개발협력(ODA)사업 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선관위는 김 사무총장은 A-WEB을 사실상 미루의 영업기지처럼 활용했다고 봤다. 정부는 2016년 5월 ODA사업 심사를 통해 현지 정세불안 등을 감안해 DR콩고 TVS사업을 탈락시켰다. 열악한 정보통신(IT) 인프라와 높은 문맹률 등을 고려하면 TVS는 부정선거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감안했다. DR콩고는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2016년 말로 임기가 끝났지만, 대통령직을 내려놓지 않은 채 17년째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더 이상 관련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권고였지만, A-WEB은 오히려 ODA예산을 활용해 DR콩고선거위원회(CENI) 실무진을 대상으로 미루의 TVS에 대한 시연ㆍ체험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해 8월에는 DR콩고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을 대상으로 미루의 TVS장비를 시연할 수 있도록 했다. CENI 관계자들을 연수 등을 명분으로 국내에 초청한 뒤, 미루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미루의 영업활동을 직접 지원하기까지 했다. 김 사무총장은 미국ㆍ프랑스 등이 우려를 표하자, 오히려 지난해 11월에는 DR콩고를 직접 방문해 TVS를 판매할 수 있도록 서방외교관들을 설득했다. CENI 측에는 TVS 추가 지원까지 약속했다.
미루는 결국 TVS 10만6,000대(약 1,700억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따냈다. 하지만 이로 인해 DR콩고 현지 한국 교민들은 신변위협까지 받는 상황에 처했다고 선관위는 우려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DR콩고 민주화운동 단체인 ‘루차(LUCHA)’가 주도한 한국 투표기 도입반대 시위를 경찰이 강제 진압하면서 23명이 부상하는 등 유혈충돌도 끊이지 않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또 미루의 사업과 관련해 김 사무총장이 기니 등을 대상으로 한 유권자등록 단말기(MVIS) 입찰 불공정과 피지의 선거ICT 선진화사업 입찰 불공정 혐의 등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김 사무총장이 미루를 위해 A-WEB의 조직과 인력, 예산 등을 지속적으로 투입해 보조금관리법 및 형법(업무상 배임 등)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김 사무총장은 선관위가 내부 감사를 제기한 일련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김 사무총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DR콩고 TVS사업은 콩고 정부가 벨기에 프랑스 등의 현지조사를 거친 뒤 우리 쪽에 먼저 제안한 사업”이라며 “국내 기업 가운데 TVS 기술을 가진 기업이 미루밖에 없어 시연에도 미루만 참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업자 선정을 목전에 두고 부정 선거 가능성을 우려하는 서방 외교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김 사무총장이 직접 나섰다고 선관위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도 “TVS의 안정성만 설명해 달라는 주DR콩고 한국대사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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