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문재인 대통령 방북 직전인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북한의 불법무기 거래, 연료 위장 수송 등의 내용을 담은 전문가 패널의 대북 제재 이행 보고서가 안보리 제출 과정에서 러시아 압력으로 수정된 것을 따지기 위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대북제재 구멍이 심각하고 러시아가 훼방까지 놓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제재 고삐를 다잡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지만, 남북관계 진전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라는 한국 정부에 대한 간접 메시지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주유엔 미국대표부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대북 제재 이행을 약화시키고 방해하려는 일부 회원국들의 노력을 고려해, 대북 유엔 제재 이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 안보리 회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전날 성명에서 “이번 주 안보리에 제출된 전문가 패널의 대북 제재 이행 보고서가 지난달 대북 제재위에 제출된 것과 같지 않다”며 “러시아가 압력을 넣어 수정한 것”이라며 러시아를 정면 겨냥했다. 그는 “러시아의 간섭은 유엔 패널 보고 과정의 신성함을 해치는 용납할 수 없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성토하면서 “러시아 압력에 굴복한 패널에도 실망했다”며 전문가 패널에 보고서를 다시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외신에 따르면 초안에는 북한과 합작 기업을 만들고 정제유를 불법 환적하는데 개입한 러시아 기업과 개인들의 이름이 포함됐으나 대북 제재위를 거치면서 일부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도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가 보고서 내용을 바꾸려 함으로써 유엔 안보리 결의를 약화하기 위한 적극적 시도를 했다”며 보고서 수정을 재차 요구했다. 그는 “대북 제재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완전하고 최종적인 한반도 비핵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시키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미국과 러시아간 논란이 일고 있는 대북 제재 이행 보고서에는 북한이 시리아, 예맨, 리비아 등 중동 분쟁 지역에 무기를 밀매했고, 러시아와 중국 선박을 통한 환적으로 석유 수입이 급증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고 전했다. 시리아 무기 밀수업자가 예맨 후티 반군에 탱크, 로켓추진수류탄, 탄도미사일 등 북한 무기를 중개한 증거가 포착됐으며, 북한의 무기 기술자들이 지난해 시리아 군수 공장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기업이 북한의 철, 강철, 섬유, 음식 등을 수 천만 달러어치 구입했고, 북중 합작 기업도 200개 이상이라는 내용도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러시아가 북한과 39건의 합작 투자 사업을 벌였으며, 북한 금융 요원들이 제재 규정을 위반해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여전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도 포함됐다. 보고서는 “북한 요원들이 최소 5개국에서 처벌 받지 않고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 제재는 이행이 가장 더디며 제재 체계를 쉽게 침범 당하는 분야”라고 지적했다.
헤일리 대사가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한 날은 18일 문 대통령이 방북하고, 뉴욕에선 유엔 총회가 개막하기 전날이어서 주목된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대북 제재의 강도를 최대로 높이면서, 유엔 회원국들에는 제재 이행의 경각심을 재차 촉구하는 효과도 담긴 셈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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