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시절 사법농단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넉 달째로 접어들면서 대법관급 이상의 ‘윗선’에 대한 직접 수사가 언제 시작될 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윗선’ 지시로 사법농단 실무를 총괄한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소환 조사가 수사의 범위와 속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 표명 이후, 검찰이 사건을 특수부로 재배당하고 수사를 본격화한 지 16일 현재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한 정권의 각종 의혹사건 종합판에 해당하는 국정농단 수사가 최순실씨 출석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5개월 정도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법농단 수사는 이례적으로 속도가 늦은 셈이다.
수사 기간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검찰이 사상 초유의 사법부 핵심에 대한 수사에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고 ▦법원이 고비마다 압수수색영장 등을 계속 기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엔 대법원 자체조사로 드러난 판사 사찰 의혹에 수사력이 집중됐지만, 7월 하순 임 전 차장 USB 확보를 기점으로 수사는 청와대와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으로 확대됐다.
그 동안 사법농단 실무를 담당한 전ㆍ현직 법관 50여명을 소환했던 검찰은 ‘의혹의 핵심 고리’인 임 전 처장 소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차관급인 고등법원장급(행정처 차장) 이상의 최고위 법관을 상대로 하는 조사를 앞둔 만큼, 검찰은 수사 폭과 속도에 매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다만 검찰 수뇌부 사이에서는 이 정도에서 수사를 덮을 수 없다는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 기각 등의 문제로 검찰이 속전속결 대신 바닥 다지기식 수사를 벌이고 있어, 다음 타깃인 임 전 처장 소환이 다소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임 전 차장이 검찰에 나와 당시 상황을 얼마나 소상히 진술하느냐에 따라, 더뎠던 윗선 수사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수사가 거론되던 시점에 개통한 차명폰을 최근 확보해 증거인멸 및 말 맞추기 정황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사법농단이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 지시 혹은 승인 없이 행정처 차장의 독단적 결정으로 이뤄질 수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윗선 개입 의혹의 한 축에는 2014년 2월부터 2년간 행정처를 이끌었던 박병대 전 대법관이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재판거래 문건 작성 주도 ▦강제징용 재판 지연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소송 재판부 외압 ▦일선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조성 등 각종 의혹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이었던 고영한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소송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적인 연루 혐의도 일부 드러났다. 검찰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재직기간 계산 조항에 대한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에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취소하라고 압박한 정황을 확보한 상태다.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이 계속될 지도 윗선 수사 진행 속도를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만큼, 영장 기각으로 인한 수사 차질이 좀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수사팀 내부에선 “영장심사 기조가 여전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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