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26진, 문무대왕함(DDH-976)이 베트남 다낭에서 3박 4일간의 군사외교를 마치고 16일 오전 한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진해항에는 추석 연휴 전인 오는 20일 도착하게 됩니다. 지난 2월 12일 같은 항을 출발한 지 221일 만입니다. 이로써 문무대왕함은 대한민국 해군 역사에서 두 개의 기록을 새로 쓰게 됩니다. ‘최장시간 작전’과 ‘최장거리 작전’ 기록입니다.
‘지구 두 바퀴’ 최장거리 작전
이번 작전 기간은 종전 24진(대조영함)이 세운 기록(204일)보다 16일 긴 221일에 이릅니다. 통상 작전 기간이 6개월(180일)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그보다 한달 반 정도 더 긴 셈입니다. 한 수병은 “하마터면 추석도 배에서 쇨 뻔 했다”며 ‘추석연휴 전 복귀’ 사실에 대단히 고무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난 2월 설을 배에서 보냈습니다.
해군 사상 최장시간 작전이었던 만큼 작전 거리도 해군 창군 이후 최장 거리입니다. 그 거리가 지구 두 바퀴를 돌고도 남는 8만4,000㎞에 달한다고 합니다. 문무대왕함 관계자는 “’최(最)’가 이렇게 많이 붙은 경우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 서아프리카 작전
오랜 시간 먼 거리를 움직였다는 것은 그 만큼 일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지난 3월 문무대왕함은 서아프리카 해상에서 작전을 펼쳤습니다. 가나 인근 해역에서 한국 국민 3명이 피랍됐을 때였습니다. 지난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삼호 주얼리호 선원 21명이 납치 때처럼 직접 작전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사고 현장에 급파됨으로써 한국 측의 협상력 제고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 서아프리카 해상에서 작전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후 지난 8월에는 홍해, 수에즈운하를 지나 지중해에도 진입했습니다. 리비아 해역에서 한국인 1명이 리비아 무장단체에 납치되자 인근 해역으로 급파돼 석방 지원 작전을 펼쳤습니다.
청해부대 주요 작전해역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아라비아반도의 예멘 사이 아덴만입니다. 홍해,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관문입니다. 한국의 해상 물동량 30%가량이 이 해역을 통과한다고 합니다. 해군은 연간 500척 이상의 국적 선박이 통과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상 수술’ 기록까지
청해부대는 주로 이 해역의 국제권고통항로(IRTC) 상에서 선박 호송 작전을 펼치며 2주에 한번 오만 살랄라항 등 인근 항구로 입항, 연료와 식량을 보급 받습니다. 또 군함 내에서 다루기 어려운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비교적 의료 인프라가 잘 구축된 오만으로 환자를 이송합니다.
하지만 희망봉을 돌아 주작전 해역으로 향하던 5월 12일, 충수염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발병 사실이 확인되면 빠른 시간 내 수술이 이뤄져야 하는 질병입니다. 문무대왕함 관계자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수술이 이뤄진 것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2011년 최영함의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구출된 석해균 삼호 주얼리로 선장이 사관실에 마련된 임시수술대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 작전 도중에 선상에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군의관 김민성 대위와 이진구 의무중사는 지난 11일 다낭 기항 첫날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로부터 표창을 받았습니다.
26진 문무대왕함은 다낭에 정박하고 있는 동안 많은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문무대왕함 기술진들이 항공편으로 남쪽 붕따우로 날아가 초계함 ‘김천함’의 음파탐지 장비 등의 점검 활동입니다. 군 관계자는 “김천함은 지난해 5월 베트남에 양도한 군함”이라며 ‘베트남 군에 대한 애프터 서비스’로까지 표현했습니다. 청해부대는 베트남 해군 제3해역사령부 방문해서 우호협력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습니다. 이튿날에는 한국 주요 인사와 교민, 베트남 해군 관계자를 문무대왕함으로 초청, 함상 리셉션도 진행했습니다.
역대급 선상 개방 행사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다낭 시민, 다낭 거주 외국인들에게까지 문무대왕함이 추가로 공개됐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지난 5월 부임한 김도현 대사가 추진한 일입니다. 도진우(대령) 부대장과 면담에 나선 김 대사가 ‘트래픽’ 확대를 주문했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차린 김에 한국 교민과 베트남 군 뿐만 아니라, 베트남 일반 국민, 외국인들이 한국 군함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다낭시의 협조로 미국인과 베트남인 등 40여명의 민간인이 추가로 문무대왕함에 올랐습니다. 군함은 국제법적으로 자국 영토로 인정되기 때문에 배에 오르기 위해서는 사전 심사와 함께, 항만에 임시로 설치되는 입출국 심사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도 부대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베 양국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것은 물론, 세계 속에 대한민국 해군을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문무대왕함은 당초 3박 4일간의 일정을 소화한 뒤 14일 오후 출항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5일 새벽 필리핀을 강타한 슈퍼 태풍 ‘망쿳’을 피하기 위해 이날 오전 출발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이 경우 도착도 이틀 늦춰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문무대왕함은 20일 진해항에서 열릴 환영식에 예정대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빨리 도착해도, 늦게 도착해도 안 되는 군대임을 감안하면,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작전’인 셈입니다.
다낭=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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