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의 별명은 고구마다. 진지하지만 한 가지 문제를 숙고하는 타입이라 답답하다는 느낌이 배어 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지난 대선 때 “고구마는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 내가 바로 든든한 후보”라고 애칭으로 받아들였다. 단순 명쾌한 말로 사이다에 비유됐던 이재명 후보에 맞서 “사이다는 시원하긴 하지만 마시고 나면 또 목이 마르다”고 되받아치는 여유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문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지지자들이 붙여준 ‘달님’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미지는 취임 이후 ‘사이다’로 180도 변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1호 정책에 이어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속이 뻥 뚫리는 행보로 고구마라는 별명이 쏙 들어갔다. 문 대통령의 고구마 별명은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다시 등장했다. 당권 도전에 나섰던 이해찬 대표가 대통령과의 정치적 호흡을 부각하기 위해 고구마 대통령의 사이다를 자처하면서다. 하지만 이 대표가 문 대통령을 ‘문 실장’으로 호칭하면서 고구마와 사이다의 상호보완적 이미지는 다소 퇴색했다. 취임 이후 이 대표의 광폭 행보도 아슬아슬하다.
▦고구마는 답답한 이미지의 대명사로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지만 우직하고 원칙적이라는 느낌도 동반한다. 근엄한 표정에다 눌변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과묵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문 대통령의 생활 스타일은 그런 양면적 이미지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2011년 ‘운명’이란 책을 내놓고 거취를 고민하던 문 대통령에게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당시 세간의 지적을 던진 적이 있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야망에 도달하기 위해 흙탕물도 마다하지 않고 발을 담그는 용기가 권력의지라면, 저는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딱 고구마였다.
▦정부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야당이 문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야당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적법절차’를 내세워 국회를 몰아붙이는 모양새가 올해 초 개헌안 발의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가 걸린 판문점선언의 무게가 정쟁의 대상인 개헌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원칙과 절차만 앞세우다가 개헌안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공약과 명분을 지키겠다면서 우직한 고구마 리더십만 내세우다가는 협치라는 현실정치가 꽉 막힐 수도 있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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