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서점들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구 감소와 젊은층의 활자기피(活字離れ) 현상 탓이다. 2000년 2만1,654곳 서점이 있었으나 2017년 1만2,026곳으로 40% 가까이 급감했다. 그 추세는 더욱 가팔라져 2017년부터 올해까지는 약 500개의 점포가 사라졌다. 매일 1곳 이상의 서점이 문을 닫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적과 잡지를 합친 출판물 판매액도 1997년 약 2조6,000억엔(26조원)에서 지난해 1조4,000억엔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폐업은 영세한 동네 서점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6월 도쿄(東京) 롯본기(六本木) 한복판에 있던 아오야마(靑山)북센터가 3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었고 미술과 디자인 등 예술서가 많아 약속 장소로 인기를 끌었던 곳이다. 일본 최대서점 체인인 기노쿠니야(紀伊国屋)의 신주쿠미나미(新宿南)점이 있던 건물에는 2016년 가구업체 니토리 대리점이 들어섰다.
도쿄의 명소 중 한 곳인 진보초(神保町) 서점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6년 11월 진보초의 상징인 이와나미(岩波) 북센터가 문을 닫은 뒤 올해 4윌 ‘진보초 북센터 위드 이와나미북스’로 재탄생했다. 책만 판매했던 이전에는 젊은층에게 진입 장벽이 높았다는 판단 아래, 커피숍과 행사공간을 갖춘 복합시설로 거듭났다. 카페 양쪽 벽면에는 이와나미문고 등 9,000권이 진열돼 있다.
도쿄도(東京堂)서점 간다(神田) 진보초점도 2014년부터 서점 안에 카페 공간을 마련해 여성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카페에는 책을 사서 읽는 고객들로 늘 가득 차 있다. 책의 진열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옴진리교 간부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을 때엔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당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피해자 인터뷰를 묶은 ‘언더그라운드’를 입구 근처에 진열했다. 기자가 도쿄도서점을 찾은 지난 11일에는 잡지 판매대 한 곳이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교토(京都)와 관련한 잡지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진보초에 있는 고서점가는 전문성을 살려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은 이미 아마존 등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사인이나 친필이 있는 책은 전문가 감정이 필요해 전문 서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진보초에서 스포츠 관련 고서점을 운영하는 오노 요시유키(小野祥之)는 “고서적 매니아들은 진품 여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구입한다”며 “매장에서 진품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이지(明治)시대부터 고지도와 우키요에(浮世絵) 판화를 취급해 온 오야쇼보(大屋書房)는 요괴가 그려진 에도(江戸)시대 우케요에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매에도 출품한 적이 있고, 온라인상에서도 상품을 올리면 고객의 80% 정도가 외국인일 정도로 유명하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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