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있으면 전세로도 살지 못하는 것이냐.”
중ㆍ고등학생 자녀 2명을 둔 최모(48)씨는 14일 정부의 ‘9ㆍ13 주택시장 안정대책’에 대해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 맞벌이를 하는 최씨 부부의 합산 소득은 1억1,000만원인데, 이번 대책에서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자금 보증 제공 기준이 부부합산소득 1억원 이하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최씨는 서울 송파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커 같은 단지의 84㎡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지난달 전세 계약까지 맺었다. 대출을 받지 못할 경우 최씨는 계약을 파기해야 할 상황이다. 최씨는 “12월에 이사를 하기로 날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돈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당황스럽다”며 “제2금융권에서라도 대출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그냥 지금 집에 그대로 거주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결혼 1년 차 신혼인 유모(36)씨 부부도 정부의 발표에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권에 근무하는 유씨 부부의 합산 연봉도 1억원을 갓 넘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의 전용 34㎡ 아파트에 살고 있는 유씨 부부는 직장과 가까운 마포구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할 계획이었지만 돈을 빌리는 게 여의치 않게 됐다.
정부가 1주택자의 전세자금 대출에 대해 공적 보증을 제공하는 소득 요건을 신설하면서 맞벌이를 하는 전세자금대출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자녀가 커 집을 넓히거나 직장 등 문제로 이사를 하려던 이들은 갑자기 돈을 빌릴 수 없게 됐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매매가 불가능해져 전세로 눈을 돌렸지만 이마저도 높아진 대출 문턱에 막히게 될 판이다.
연봉 생활을 하는 맞벌이 부부의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가계금융ㆍ복지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소득 1억원 이상 가구는 전체의 10.1%나 된다. 특히 이사 수요가 많은 40대 가구 중 소득 1억원 이상 비중은 13.7%, 50대 가구는 16.8%로 더 높다.
금융기관에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실수요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A은행 관계자는 “전세자금 대출 소득 요건이 신설돼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맞벌이 부부의 문의가 대폭 늘었다”며 “하루라도 빨리 민간 보증기관인 서울보증보험 전세자금대출 등을 알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규제 시행에 앞서 전세계약을 맺은 실수요자의 경우에는 공적 전세보증을 받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택금융공사 내부 규정을 개정할 때 대책 발표 이전 전세계약을 맺은 경우라면 신설되는 보증 한도가 적용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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