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독살 시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러시아인 2명이 13일(현지시간)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현재 러시아에 체류 중인 이들은 사건 당시 영국에 있었던 이유에 대해 “순전히 관광객으로서 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 등에 따르면 루슬란 보쉬로프와 알렉산드르 페트로프는 이날 러시아 관영 RT TV의 보도국장 마르가리타 시모니얀과의 인터뷰를 하고 이 같이 밝혔다. 앞서 영국 검찰은 과거 러시아와 영국의 이중 스파이였던 세르게이 스크리팔(66)과 그의 딸(33)이 올해 3월 4일 영국 솔즈베리에서 신경제에 노출돼 사망할 뻔한 사건과 관련, 지난 5일 보쉬로프와 페트로프가 범인이라면서 이들 두 사람을 살인공모와 살인미수 등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보쉬로프, 페트로프는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GRU) 소속 장교이며, 구체적 증거도 확보했다”면서 두 사람이 등장하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쉬로프와 페트로프는 이러한 영국 검찰의 공식 발표를 전면 부인했다. 페트로프는 “친구들이 오래 전부터 이 멋진 도시(솔즈베리)를 가 보라고 권했다”고 했고, 보쉬로프도 “솔즈베리엔 유명한 사원이 있어 인기 있는 관광 도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 출장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런던에 가서 조금 있다가 솔즈베리에 가려고 계획했었다”고 덧붙였다. ‘100% 관광 목적의 솔즈베리 방문’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으로 향할 때 독극물을 휴대하지도 않았고, 스크리팔의 집은 물론 그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는 주장도 했다 보쉬로프는 자신들이 독극물을 ‘니나 리치’ 향수병에 넣어 갔다는 영국 측의 발표 내용에 대해 “보통 남자가 여자 향수를 갖고 다니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며 “세관 통과 시 문제가 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에게 (스크리팔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이런 악몽이 시작되기 전엔 그런 성(姓)도 못 들어 봤다”고 강조했다.
GRU 소속 장교인지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도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자신들은 비타민과 단백질 등 스포츠 식품을 취급하는 ‘중소 사업가’일 뿐이라고 설명한 이들은 그 이상의 구체적인 신원에 대해선 “사업 파트너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영국 당국이 공개한 CCTV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맞고, 이름 역시 본명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스크리팔 사건 용의자들과 관련, “그들이 스스로 언론사 등에 찾아가 직접 얘기하길 바란다”고 말하자 시모니얀 국장에게 직접 전화해 인터뷰를 자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인터뷰는 의문점을 해소시켰다기보단, 또 다른 질문들을 낳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BBC는 “솔즈베리 방문 이유, CCTV에 드러난 두 사람의 동선 등을 설명한 이들의 주장에 설득력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점이 새로 제기된다”며 “런던과 모스크바 간 투쟁이 다음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