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허리띠 조르는 터키, 머리띠 매는 아르헨티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허리띠 조르는 터키, 머리띠 매는 아르헨티나

입력
2018.09.16 14:42
수정
2018.09.16 20:18
18면
0 0
터키 수도 이스탄불 환전소에서 현지인들이 최근 통화가치 급락으로 크게 높아진 리라화 대비 미국 달러 환율을 실감하며 환전을 하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터키 수도 이스탄불 환전소에서 현지인들이 최근 통화가치 급락으로 크게 높아진 리라화 대비 미국 달러 환율을 실감하며 환전을 하고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터키 경제중심지 이스탄불에서 견과류를 판매하는 세달 투르단. 리라화 폭락으로 가게운영비가 지난해 이맘때보다 60% 가까이 상승했지만, 가격은 거의 올리지 않고 있다. 당장 손님들이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해서다. 8월 한 달 수입이 반으로 줄었지만, 그는 일단 더 감내해 볼 작정이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다섯 자녀를 둔 주부 가브리엘라 길(49)씨는 “긴축정책이 도를 넘었다. 하루하루를 살기 힘들다”며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권에 긴축정책의 폐기를 요구했다.

1997년 한국과 동남아에서 벌어진 일이 터키, 아르헨티나에서 재연되고 있다. 똑같이 외환위기를 당했지만 두 나라 대응이 엇갈리고 있다. 외환유출을 막고 정부지출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긴축정책을 펴는 건 동일한데, 일반 기업과 시민들의 협조와 호응은 완전히 다르다.

터키는 정부의 금리인상과 긴축에 맞춰, 기업과 노동자 등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당장은 고통스러워도, 위기에서 하루 빨리 탈출할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정부의 고강도 충격 요법이 시장에서 먹히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까지 임금 인상을 밀어붙이며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엇박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문가들과 국제금융계 여론은 터키에 우호적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리트저널 등 외신은 터키, 아르헨티나 두 나라를 통화가치 하락,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상반된 방식에 초점을 맞춰 비교했다. 터키의 경우 지난 주말 기준금리를 6.26%포인트 전격 인상했지만, 정부 개입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전략을 선택했다. WSJ에 따르면 이스탄불의 상인 투르단처럼 기업과 소매상들은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있다.

특히 터키 노동자들 사이에선 임금인상 요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 때문에 지레 포기한 경향도 있겠지만,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돼 있다. 경제가 더욱 나빠지면, 그나마 유지하던 일자리마저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하고 있다. 민간 경제 주체의 호응 덕분에 지난 주말 터키 당국이 정책금리를 깜짝 인상하자, 미국 달러화 대비 리라화 가치가 4% 넘게 회복됐다.

13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회의사당 앞에서 공무원 해고와 금리 인상 등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드럼을 치며 행진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 연합뉴스
13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회의사당 앞에서 공무원 해고와 금리 인상 등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드럼을 치며 행진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반면 아르헨티나는 정부와 민간 대응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중앙은행의 60%포인트 금리 인상 △정부 부처 공무원 절반 축소 등 터키보다 강력한 정책이 나왔지만, 시장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물가는 30%까지 치솟아 정책금리 인상 효과를 순식간에 반감시켰고 외국 자본의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WSJ는 “민간에서는 여전히 임금 인상 요구에 나서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럭 운전사부터 교사, 공무원들까지 물가 상승을 반영해 월급을 올려 달라는 시위가 곳곳에서 넘쳐 나고 있다.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정부 입장에선 더 많은 돈을 찍어내 재정 지출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두 나라에 대한 국제금융계와 전문가들의 여론도 엇갈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는 강력한 노조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터키에 대해서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분위기다. 국제 투자기업 인베스코의 닉 메이슨 펀드매니저는 “터키 당국이 통화가치 하락을 인플레이션 이내에서 붙잡는 데 성공한다면, 환율하락이 향후 2년 이내에 수출과 관광수입 증대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