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스리랑카 북부 마나르 지방에서 작업 중이던 건설 노동자들은 대량무덤(Mass grave)으로 보이는 현장을 발견했다. 스리랑카 망명 언론인들이 운영하는 ‘스리랑카 민주주의를 위한 저널리스트’에 따르면 발견 지점은 마나르와 메다와치야 지방을 잇는 A14도로 위, ‘사토사(Sathosa)’라는 이름의 도매협동조합이 있던 자리다. 이후 3개월여간 진행된 유해 발굴 작업으로 이달 7일까지 총 140구의 유골이 발견됐고, 이 중 112구가 수습됐다. 최소 12구는 어린이의 것으로 알려졌다. 발굴팀을 인용한 현지 언론들은 시신이 뒤죽박죽 엉켜 있었고 일부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묻혀 있었다고 전했다. 내전 기간(1983~2009년)에 학살된 이들이 집단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스리랑카에서 대량무덤 발견은 2009년 내전 종식 이후 두 번째다. 앞서 2013년 12월에도 이번 발견 지점에서 멀지 않은 티루케티스와람 힌두사원 부근에서 사체 96구가 나온 바 있다. 당시 유해 발굴 작업은 5개월 만인 이듬해 4월 8일 갑자기 중단됐다. 발굴작업을 총지휘하던 세나라트 디사나야케 고고학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학살로 인한 대량무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묘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5년 미세한 변화가 왔다. 그해 1월 마힌다 라자팍세 당시 대통령이 3선에 실패해 지금의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정부가 들어선 데다, 때마침 티루케티스와람 사원 인근에서 유골이 더 나온 것이다. 범죄수사국(CID)은 새로 발견된 지점의 유해 발굴에 나서면서, 전년도에 중단됐던 작업도 재개했다.
그러나 현 정부 하에서도 한계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1차 발견 무덤에 대한 진상 규명이 흐지부지됐다. 지난 7일 마나르 지방법원은 언론의 ‘사토사 유해발굴 현장 취재’를 경찰이 막을 수 있도록 했다. 발견 직후부터 언론 취재를 못마땅해하던 경찰이 낸 취재 제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경찰과 법원은 “취재진이 현장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스리랑카의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과 대량 무덤의 연계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려는 속내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나르 지방은 내전 기간 스리랑카 정부군과 이 나라의 소수민족인 타밀족 반군인 타밀타이거(LTTE) 간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곳이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이 지역이 정부군에 함락되면서 고도 보안 구역(High Security Zone)으로 선포됐다. 마나르 곳곳에 설치된 군 검문소는 타밀족 젊은이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강제실종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타밀 언론은 유해 발굴 현장에서 나온 물품(비스킷 포장지) 등에 비춰, 이번에 발견된 집단 무덤이 90년대 초 학살의 현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반면, 스리랑카군 대변인 수미트 아타파투 준장은 “이 무덤과 군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스리랑카의 강제실종 역사는 대단히 오래됐으며 심각하다. 2015년 유엔 산하 ‘강제적ㆍ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이 밝힌 바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강제실종은 이라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앰네스티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대략 6만~10만명가량이 이 나라에서 강제실종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인종갈등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벌어진 분쟁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1971년과 1980년대 말, 두 차례 있었던 극좌무장정당인 인민해방전선(JVP)의 무장 봉기 과정에서도 강제실종은 적잖게 발생했다. 예컨대 2012년 11월 25일 중부 마탈레 지역에서 발견된 대량무덤은 JVP 당원이나 동조자로 찍혀 끌려간 이들이 묻힌 곳일 가능성이 크다. 마탈레는 JVP의 2차 무장봉기(1987~1989년) 당시, JVP가 활발히 활동했던 구역이기 때문이다. 마탈레 무덤 발굴팀도 시신들이 무질서하게 묻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1986년과 1990년 사이에 매장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이 무덤 조사도 도중에 중단됐고, 유골들의 신원은 단 한 구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스리랑카 강제실종진상규명위원회(OMP)가 중간보고서를 발표해 이목이 집중됐다. OMP는 시리세나 정부가 국제사회 압력에 못 이겨 강제실종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설치한 ‘독립 기구’다. 2016년 8월 의회에서 ‘OMP 법’이 통과된 데 이어, 이듬해 7월 20일 시리세나 대통령이 이를 최종 승인했다. 그리고 올해 2월 28일, 시리세나 대통령은 OMP 위원 7명을 임명하고, OMP 활동 예산으로 14억 스리랑카루피(한화 약 97억원)를 배정했다. OMP는 6월부터 마나르 대량무덤 발굴 현장에도 관여하며 발굴작업 자금도 일부 지원하고 있다. 이에 앞서 스리랑카는 지난해 12월 10일, ‘강제실종 금지 국제규약’도 비준했다. 국가폭력의 대표적 유형인 강제실종은 이제 스리랑카에서 엄연한 공식 범죄가 됐다.
그러나 강제실종 문제에 대한 시리세나 정부의 진정성은 곳곳에서 의심받고 있다. 지난 5일 대통령과 총리, 의회에 제출된 OMP 중간보고서는 강제실종자 가족의 경제 상황이 극단적으로 열악하다면서 ‘매월 6,000 스리랑카루피(한화 약 4만1,000원)의 지원금 제공’ 등 여섯 가지의 긴급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리세나 대통령은 수용 입장을 표명하는 대신, 중간 보고서 실행 검토를 위한 또 다른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 남발, 관료주의적 행정 절차 등으로 시간 끌기만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 건 당연했다.
강제실종 사례가 대거 몰려 있는 북부 킬리노치(반군의 옛 수도)와 물리바이칼(내전 마지막 현장) 등에선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해 3월부터 500일 이상 옥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족들이 대량무덤 발견 소식에 귀를 바짝 세우면서도, OMP의 활동을 회의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무리가 아니다. 내전 막바지였던 2009년 5월, 정부군에 투항했던 타밀 반군 병사의 상당수는 여전히 강제실종 상태다. 실종자 가족들은 “투항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수년간 요구해 왔고, 시리세나 대통령도 지난해 7월 명단 공개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이 명단을 공개한 주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변호사 야스민 수카가 운영하는 ‘국제 진실정의 프로젝트(ITJP)’였다. 현재까지 ITJP는 338명의 이름을 실종 날짜, 실종 장소별로 업데이트해 둔 상태다.
지난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선 제39차 유엔인권이사회(UNHRC) 개회식이 열렸다. 이달 28일까지 계속되는 이 자리에서 스리랑카의 강제실종 문제는 수년간 그래왔듯 또다시 도마에 오를 예정이다. 지난달 초 신임 유엔인권최고대표에 오른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은 10일 기조연설에서 스리랑카의 전후 정의 실현이 너무 느리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OMP의 진실 규명 작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지, 특히 강제실종자 가족들에게 해답을 제시할지 지켜보겠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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