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맡게 된 자체가 행운이죠. 세계적으로 이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는데 관객들은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하니까요.”
도니제티 오페라 ‘연대의 딸’의 테너 아리아는 모든 작품 중 가장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다. 내년 7월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무대에서 이 오페라의 주역 토니오를 맡게 된 이는 한국 테너 김건우(33)다. 그는 지난해부터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성악가 훈련 프로그램인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보통은 영 아티스트에게 메인 성악가 커버 역할이나 작은 역할이 주어지는 것에 비하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연대의 딸’을 비롯해 내년 상반기에만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4개의 작품에 출연하는 그가 잠시 한국을 찾았다. 최근 서울 대흥동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난 그는 “도밍고 콩쿠르가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줬고, 이후 인생의 길의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건우는 세계적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오페랄리아 국제콩쿠르(도밍고 콩쿠르)에서 2016년 우승했다.
김건우는 성대를 타고났다. 어려서부터 높은 음을 어렵지 않게 냈다. 하지만 원석을 가다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축구선수를 예로 들면 체력과 달리기 실력이 너무 좋은데 경기 운용능력이 별로일 수 있잖아요. 제가 예전에 그랬어요. 타고난 고음만 믿고 정작 중요한, 공을 다루는 법을 몰랐던 셈이죠.” 대학 1학년 첫 시험 후 소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꼴찌라는 성적을 받은 후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좌절이었죠.”
경희대 졸업 후 2014년 독일 마인츠 음대로 유학을 떠난 김건우는 2015년 캐나다 몬트리올 콩쿠르와 이듬해 도밍고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모인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그는 또 한번 도약했다. “극장에서 꾸준히 부름을 받는 성악가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리를 가진 사람들이더라고요. 어렸을 땐 이런 고민을 안 해 봤어요. 계속해서 제 목소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 계기예요.”
그는 14, 15일 상암월드컵경기장 수변무대에서 공연되는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노래한다. 마포문화재단의 클래식 축제 일환으로 대중성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3시간에 가까운 오페라를 90분 가량으로 압축했다. 김건우는 “무대도 프레임도 없으니 분산된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집중시킬지, 감정과 긴장감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야외오페라는 오페라 마니아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공연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공연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해요. 누구에게 어떤 영감이 될지 모르니 어떤 무대라도 항상 잘 해야죠.”
내년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는 독립한다.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고 목을 아끼며 오래 활동하는 성악가가 되기 위해서다. “지금도 하고 싶은 무대가 많아요. 단순히 유명한 작품 말고 ‘나에게 잘 맞겠다, 아니면 나에게 어렵겠다’ 싶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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