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공약’ 후폭풍 대선때 예고
집권 후 ‘정책거버넌스’ 방치해 소란 자초
“국정은 신념보다 책임 문제”, 신뢰 찾아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지난해 4월 말, 캠프 내 유력 관계자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승리가 눈앞이지만 축배의 시간은 짧고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내년 지방선거가 벌써 걱정된다.” 그가 화근으로 생각한 것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공약이었다. 약속을 실천하려면 노동계 요구대로 최저임금을 매년 15% 이상씩 3년 연속 올려야 하는데, 그 부담을 직격탄으로 맞는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이 감내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공약을 피해 가면 노동계 등 지지층의 배신감이 하늘을 찌를 것이고.
필자는 선거 직전 이 얘기를 칼럼으로 쓴 데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재차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폭넓고 디테일한 접근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 문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파격적인 사이다 행보로 국민 가슴을 뚫어준 서생의 문제의식으로는 부족하며, 진짜 실력은 세밀한 정책 로드맵과 선후ㆍ완급ㆍ강약을 조절하는 상인의 현실 감각에서 드러나는데, 첫 시험대가 최저임금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그 일부다 “과거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 자릿수로 제한적이었던 것은 적용 대상 근로자의 82%가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즉 지불 능력이 부족한 사업장에 근무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영업자의 52%는 연평균 매출이 4,600만원 이하이고 월소득은 187만원 수준이어서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1만원은 내가 노동자가 될 것인지 사용자가 될 것인지를 가름하는 변곡점’이라고 말한다. 국가 지도자의 약속은 무겁게 여겨야 하지만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가 우선인 대통령의 눈이 후보의 눈과 같을 수 없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때론 매를 감수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새 정부의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7월 15일 새벽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깜짝 놀란’ 16.4% 인상안을 통과시키고 문 대통령이 “1만원 시대로 가는 청신호이자 소득주도성장으로 가는 대전환점”이라고 반긴 후 또 글을 썼다. 새 정부 출범 전후 최저임금을 주제로 잇달아 글을 쓴 것은 캠프 관계자의 얘기에 유의해 진행 상황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세번째 글에서 필자는 “정부가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지만,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목표 연도만 달리한 채 1만원 고지를 가야할 곳으로 약속했다면 큰 걸음으로 가는 게 맞다”고 했다. 끝은 “익숙하지 않은 속도로 인해 폐업과 해고 등 이른바 ‘시장의 역설’ 문제가 생길 것인 만큼 사회 전체가 그몫을 나눠지면서 새로운 균형, 즉 ‘뉴 노멀’을 찾아야 한다”고 맺었다.
다시 캠프 관계자로 돌아가면, 그의 얘기는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최저임금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은 적확했으되 지방선거는 그 영향을 벗어나 여권이 압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불길한 예언은 최저임금위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또 두 자릿수인 10.9% 올림으로써 현실화됐고, 2020년 21대 총선이 여권의 악몽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심심찮게 나온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정권에서 고용ㆍ분배ㆍ실업ㆍ성장에 ‘쇼크’가 따라붙는 통계가 일상화하고,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 수만 명이 불복종 시위를 벌이는 상황이니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개월 새 30%포인트 이상 빠져 40%대로 추락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나간 얘기를 길게 한 것은 문 정부가 정권의 정체성과 직결된 최저임금 과속 인상을 추진하면서 부작용과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병행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정책 설계ㆍ점검ㆍ실행ㆍ평가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이른바 ‘정책 거버넌스’를 소홀히 해 화를 자초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이 대목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눈감았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정책 실패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고집과 집착에 따른 신뢰 상실이다. 부동산 대란까지 겹친 상황이 어렵고 안팎 비판이 거셀수록 솔직하고 투명하게 문제에 다가가야 한다. 신념만큼 책임도 중요하니 말이다. 진작에 잘 대처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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