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오픈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의 서리나 윌리엄스 행동을 풍자한 호주 타블로이드지 ‘헤럴드 선’의 만평이 미국과 호주 언론의 대결로 번지고 있다. 미국 언론이 이 만평을 인종 차별이라는 비판하자, 헤럴드 선은 오히려 그 반발로 1면에 만평을 다시 게재한 뒤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서리나 윌리엄스의 출신국인 미국 언론이 호주 특유의 백인 우월주의 경향을 문제 삼는 등 감정싸움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헤럴드 선의 만평을 담당하는 마크 나이트는 US오픈 결승 도중 심판 카를로스 라모스를 향해 불만을 터트린 윌리엄스를 뚱뚱하고 거친 성격의 흑인 여성으로 묘사하는 만평을 그렸다. 지난 9일자에 게시된 이 만평이 1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으로 알려지면서 큰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윌리엄스는 미국 내에서도 ‘성공한 여성 흑인 프로선수’라는 성격 때문에 인종ㆍ성차별적 공격을 받아 왔다.
미 언론이 당장 헤럴드 선을 공격했다. 온라인매체 복스는 프로 테니스 선수 자매인 서리나와 비너스 윌리엄스 자매의 운동 능력이 ‘고릴라 같은’ 동물에 비유되거나 여성성의 결여로 묘사돼 왔다며, 나이트의 만평 역시 이런 편견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 만평 내에서 상대 선수인 오사카 나오미가 아이티계 일본인임에도 금발 백인으로 묘사된 것 또한 백인우월주의적 인종차별 증거라고 지적했다.
헤럴드 선은 물러서지 않았다. 12일자 1면에 윌리엄스를 포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등 정치인들을 풍자한 캐리커쳐를 대거 실어 놓고 “PC(Political Correctnessㆍ정치적 올바름)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나이트와 헤럴드 선의 데이먼 존스턴 편집국장은 “인종이나 성과 관계없이 행태 때문에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이라며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여론은 대폭발했다. 전미흑인언론협회(NABJ)는 나이트의 만평이 “여러 차원에서 불쾌하다”라고 성명을 냈다. CNN과 일간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은 이번 사건은 호주 언론이 보여 온 오랜 인종주의적 경향의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비백인 이민 제한 정책인 ‘백호주의’를 도입하는 등 한동안 ‘백인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해 온 분위기가 언론에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미국 만화가 크리스 킨드레드는 “미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호주는 인종주의에 적절히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말했다.
반면 호주에서는 나이트의 풍자를 옹호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만평 작가 폴 자네티는 “불량한 행동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깎아내리는 게 만평 작가의 임무이며, 나이트의 작품은 그걸 했다”라고 나이트를 옹호했다. ‘애들레이드 어드버타이저’의 칼럼니스트 케일럽 본드도 자신의 트위터에 “이건 인종주의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항상 모욕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호주 내에서도 나이트의 만평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호주에서 어보리진(원주민) 계열 대안매체 ‘인디지너스X’를 이끄는 루크 피어슨은 헤럴드 선이 “비판의 성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지한 척 연기하면서 논쟁의 피해자 흉내를 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호주 언론 전반이 백인 위주의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며, “공격적인 인종주의를 드러내 놓고는 자신이 왜 인종주의자로 불리는지 모르는 척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의 유명 스포츠 언론인 로언 코놀리는 “나이트의 만화가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라면서도 비판을 수용하는 게 옳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작가의 의도가 어찌됐든 무지로 인해 인종차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약자의 견해를 접했다면, 그런 표현을 그만둘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밝혔다.
헤럴드 선은 호주와 미국 이중 국적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거느린 뉴스코프 계열 회사다. 뉴스코프는 호주에서 TVㆍ라디오방송과 200여개 지역 일간지 및 잡지를 거느리고 있다. 헤럴드 선은 뉴스코프 산하 타블로이드지 가운데서도 멜버른 일대 지역지 정도 위상으로 정치 성향은 대중주의 우파로 평가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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