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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들어 위를 보아야 하는 까닭

입력
2018.09.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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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위를 봐요!' 은나팔 제공
그림책 '위를 봐요!' 은나팔 제공

위를 봐요!

정진호 지음

은나팔 발행ㆍ40쪽ㆍ1만2,000원

이곳과 저곳 사이에 ‘공간’이 있다. 공간은 ‘빈 사이’이니 무언가 오가고 채워질 가능성이다. 이곳과 저곳에 사람이 있다면 그 사이에는 ‘시선’이 오가고, 오가는 시선은 관계를 빚어 공간을 채운다. 차갑게 또는 따뜻하게.

그런데 시선을 일컫는 말들의 대부분이 차갑고 일방적인 뜻을 담고 있는 까닭은 무얼까? 무시, 멸시, 천시, 경시, 감시, 좌시, 질시, 냉시, 홀시, 도외시, 백안시, 적대시, 등한시, 사갈시…. 주시나 직시 정도가 중립적이건만 그나마 ‘부드러운’이나 ‘사랑스런’처럼 다정한 말과는 어울리질 않는다. 어떤 시선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그림책을 펼쳐 본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수지가 높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거리를 내려다본다. 무채색의 거리에 눈도 코도 입도 보이지 않고 검정 머리만 보이는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가끔 아이들과 강아지가 놀기도 하지만 역시 얼굴은 볼 수가 없다. 비가 오면 사람을 가린 우산 지붕만 줄지어 지나가고, 날이 개어도 우산 지붕이 머리로 바뀔 뿐 온전한 사람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급기야 그저 한 곳으로 흘러가는 검은 강이 되어 버린 막막한 거리를 향해 수지가 외친다. “내가 여기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문득 검은 강물이 걷히고, 한 아이가 고개 들어 수지를 마주 보고 있다. 아니, 아이가 고개 들어 수지를 마주 보자 강물이 걷힌 것인지도 모른다.

시선을 마주하니 대화가 시작된다. “너 뭐하니?” “내려다보고 있어.” “왜?” “궁금해서.” “아래로 내려와 보면 되잖아.” “다리가 아파서 못 내려가.” “거기서 보면 제대로 안 보일 텐데.” “응, 다들 머리 꼭대기만 보여.” “그럼, 이건 어때?”

아이가 길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사람의 머리 꼭대기만 보던 수지에게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나던 이가 묻는다. “왜 길거리에 누워 있니?” “어떤 일이냐 하면요, 위에 저 아이가….” 기적이 일어난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드러누워 마침내는 모든 이들이 수지와 눈을 맞추고 온전한 제 모습을 보여준다. 산책하던 강아지까지도.

그리고 다 같이 외친다. “위를 봐요!” 수지 또한 고개를 들어 이제까지 제 머리만 보여주던 독자들에게 제 얼굴을 보여준다, 활짝 웃는 얼굴이다. 이어지는 마지막 책장을 넘기니, 베란다는 비어 있고, 거리는 알록달록 색깔을 되찾았다. 꽃 핀 나무 아래, 수지와 처음 수지를 마주 보아 준 그 아이가 나란히 앉아 웃음을 머금고 위를 보고 있다. 불통의 거리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던 바로 그 자리를.

상처 입어 스스로를 높은 곳에 가둔 채, 거리를 향해 간절한 소통의 눈길을 보내던 수지에게 웃음을 돌려준 것은 무엇이었나? 유심한 마주 보기, 서로 ‘응시’하는 시선의 힘이 아니었을까? 저곳에 소통을 원하는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공감의 눈길을 던진 이곳의 아이가 저곳에 갇힌 상처를 어루만져, 황량한 무채색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아닐까?

공감의 눈길이 절망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 마주 보는 따뜻한 시선이 황량한 세상에 온기를 돌게 한다. 75m 시멘트 굴뚝 위에 스스로를 가둔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300일을 훌쩍 넘겼다. 25m 조명탑 위 택시노동자의 농성도 1년을 넘겼다. 혹한과 폭염을 온몸으로 견디며 지상을 향해 간절한 소통과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상의 우리가 고개 들어 위를 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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