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혐의 재심 요청 등 노력 끝
좌파노동자당, 아다지로 후보 교체
인지도 낮아 지지 흡수 불확실
‘남미 좌파의 아이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2) 전 브라질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결국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했다. 부패 혐의로 수감 중인 그의 대통령 후보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지난달 31일 연방선거법원 판결에 재심을 요청하는 등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았으나, 그 이후 선거방송 등장 금지 명령까지 내려지자 11일 만에 ‘옥중 법적 투쟁’을 접고 불출마를 택한 것이다.
룰라는 대신 자신의 러닝메이트였던 페르난두 아다지(55) 부통령 후보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넘기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아다지의 대중적 인지도가 워낙 낮은 터라, 룰라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그대로 흡수할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까지 4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인 룰라의 대선 레이스 이탈로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브라질 대선(10월 7일)이 더욱 더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외신에 따르면 룰라의 소속 정당인 좌파 노동자당(PT) 지도부는 이날 브라질 남부 쿠리치바시에서 회의를 열고 아다지를 대통령 후보로 만장일치 승인했다. 글레이지 호프만 PT 대표는 “브라질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룰라의 출마가 필수적이라고 믿었으나, 불행히도 룰라의 권리는 존중받지 못했다. 우리에겐 고통과 분노의 순간”이라며 밝힌 뒤, 룰라가 보내온 서한도 공개했다.
룰라는 이 서한에서 “한 사람이 부당하게 투옥될 순 있으나 사상까지 가둘 순 없다”며 “우리는 수백만 명의 룰라이고, 오늘부터 페르난두 아다지가 수백만 브라질 국민을 위한 룰라”라고 밝혔다. 아다지도 “룰라에게 투표할 수 없게 된 국민들의 고통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룰라의 후계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PT의 새로운 선거 슬로건도 “아다지가 룰라다”로 정해졌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문제는 아다지가 2013~2017년 시장을 지낸 상파울루를 제외하곤, 그를 아는 유권자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전날 공개된 여론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9%로, 주요 후보들 중 5위에 그쳤다. 여론조사에서 룰라가 배제된 이후, 1위 자리는 줄곧 극우성향 사회자유당(PSL)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24%)가 지키고 있는 상태다. 다만 지난 6월 고작 2%였던 아다지의 지지율이 이후 4%에서 6%, 다시 9%로 계속 상승 중이라는 점에서 결국엔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치러지는 10월 28일 2차 결선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우리시오 산토루 리우데자네이루 주립대 교수는 “결선 투표는 보우소나루와 좌파 후보 간 대결이 될 것”이라며 “나는 아다지의 승리에 걸겠다”고 내다봤다.
이로써 브라질 대선의 최종 결과는 더욱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6일 괴한으로부터 피습을 받은 보우소나루가 1위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그에 대한 거부감도 39~43%에 달해 결선 투표 승리를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대선 불확실성이 이처럼 고조되자 이날 브라질 헤알화 가치도 전날보다 1.48%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도 출렁거렸다. 영국 가디언은 “수십년 만에 브라질에서 가장 격렬하고 예측 불가능한 선거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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