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에 외벽 설치 요청하면
“행정지도 하겠다” 안일한 답변
집 앞 담장 균열 발생 민원엔
“우리 소관 아냐 경찰에 문의를”
“하루하루가 위태로운데, 구청은 모르쇠더라고요.”
서울 성북구민 A(36)씨는 지난달 21일 이후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날 집 근처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길이 3m짜리 철근 3개가 떨어져 집 옥상 일부가 망가졌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안전사고 방지용 외벽이 설치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또 언제 지붕 위로 철근이 떨어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A씨는 “업체가 외벽을 설치하도록 사고 며칠 전부터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행정지도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사고 뒤에야 구청이 중재에 나섰지만 근본 대책보다는 ‘외벽만 세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이웃주민 김모(49)씨는 문제의 공사가 시작된 지 3일만에 집 앞 담장에 균열이 생겼다고 밝혔다. 집 전체가 흔들리는 공사장 진동과 소음 탓이라는 게 김씨 생각이다. 김씨 역시 구청의 ‘나 몰라라’ 응대가 불만이다. 김씨는 “구청에 민원을 했더니 ‘균열은 우리 소관이 아니니 경찰에 문의하라’는 답만 반복하더라”라며 “구청이 공사 허가를 냈으면 관리도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구청의 안일한 공사장 안전관리에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책임을 떠넘기는 민원 뭉개기도 도를 넘었다는 게 경험자들의 증언이다. 상도유치원 붕괴 사고 5개월 전부터 수 차례 제기된 이상징후를 묵살한 증거가 쏟아지고 있는 동작구청, 지난달 31일 지반침하 사고가 나기 전 제기된 주민들의 안전진단 요청 민원에 귀 기울이지 않은 금천구청의 행태가 다른 구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관을 믿지 못하니 직접 행동에 나선 이도 있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박말례(61)씨는 본인 소유 건물 옆에 지상 7층 규모의 건물이 올라가면서 공사장 진동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다가 급기야 공사장 앞에서 안전대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공사장 외벽이 얇고 낮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박씨 주장이다.
해당 구청들은 적은 인력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조정을 권유하는 등 나름 민원 해결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다른 구청 관계자는 “건축과 직원 1명이 3개 동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는다”라며 “인허가 업무만 해도 업무량이 많기 때문에 안전이나 관련 분쟁에 신경을 쏟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2015년 국토교통부 산하에 건축분쟁전문위원회가 꾸려졌지만 현재 사무국 인력 6명이 전국의 건축 분쟁을 모두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태국 한국토질및기초기술사회 대표는 “공무원들의 감독이 시공회사 입김에 끌려가지 않도록 인력을 증원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교육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choikk99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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