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부산서 비엔날레 연이어 개막
광주는 인간의 상상이 만든 경계
부산은 분리로 인한 ‘심리’ 다뤄
#이륙을 앞둔 비행기. 그 위에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고 있다. 웃음이 터지려 하다가도 터키로 온 시리아 난민이란 걸 알면 씁쓸해진다. 난민 사태를, 기차 지붕에 올라타 통근하는 방글라데시 사람에 빗댄 것이다. 터키 작가 할릴 안틴데레의 ‘쾨프테 항공사’는 관객에게 되묻는다. “시리아 난민은 어디로 가야 하나.”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2층)
#’정(情)’이라 적힌 초코파이 10만개가 둥글게 쌓여 있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김 교수의 미술사 수업’ 영상이 나온다. 다른 그림에는 북한 풍경이 담겨져 있다. 천민정 작가의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다. 작가는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에게 진짜 초코파이를 먹으라고 권한다. “초코파이가 북한에서 인기 있다는 거, 믿기지 않죠?” (부산현대미술관 지하 1층)
7, 8일 연이어 개막한 국내 대표 미술제 ‘제12회 광주비엔날레’와 ‘제9회 부산비엔날레’는 공교롭게도 난민, 분단 등을 만들어내는 ‘경계’를 올해 주제로 삼았다. 경계의 문제를 광주는 ‘상상된 경계들’이라고, 부산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라고 표현했다. 문제의식은 비슷하지만 접근 방법은 달랐다.
인간이 상상해 만든 경계 다루는 광주
광주비엔날레는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본 미국 민족주의 연구가인 베네딕트 앤더슨의 책 ‘상상의 공동체’에서 따왔다.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많은 큐레이터(11명)가 참여해 경계를 둘러싼 7개의 소주제전(상상된 국가들,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종말들, 귀환, 지진, 생존의 기술, 북한 미술)을 기획했다. 43개국 165명의 작가가 300여점의 작품을 내놨다.
역대 최대 규모인 만큼 회화, 설치, 영상, 조각 등 방대한 양의 실험적인 작품이 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큐레이터 추천 작품 위주로 보는 게 좋다. 예컨대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전시를 기획한 그리티야 가위웡 태국 짐 톰슨 아트센터 예술감독은 인도 작가인 실파 굽타의 ‘손으로 그린 우리나라 100개 지도’를 꼽는다. 한국인 100명이 펜으로 자유롭게 자국의 지도를 그린 프로젝트다. ‘종말들: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참여정치’ 전에서는 크리스틴 Y.김과 리타 곤잘레스 미국 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가 중국 작가인 미아오 잉의 ‘친터넷 플러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추천했다. 엑스포에 쓰이는 홍보부스 안에다 정부에 의해 검열된 정보만 부분적으로 제공해 중국의 인터넷 통제를 비꼰다.
역사적 공간을 활용한 점도 인상 깊다.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치료해주던 구 국군광주병원 본관에는 태국의 실험 예술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별자리’, 병실에다 철심 박은 고목을 세운 카데르 아티아의 ‘영원한 지금’, 병원에서 쓰던 수많은 거울을 병원 옆 국광교회 예배당 천장에 매달아 둔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 등은 놓치기 아깝다. 이 공간은 곧 트라우마센터로 바뀐다. 이번 전시가 병원의 마지막 모습일 수 있다.
분열된 영토에서 파생된 ‘심리’ 다루는 부산
부산비엔날레는 ‘심리’에 집중한다. 전시기획을 맡은 크리스티나 리쿠페로 독립 큐레이터와 외르그 하이저 큐레이터는 “분리는 지루할 수 있는 주제지만 분리로 인한 심리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편함, 그 불편함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것”이라고 말했다. 34개국, 66명이 126점을 선보이는데 규모는 광주의 절반이지만, 수준은 엇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 에바 그루빙어의 설치물인 나일론 재질의 검은색 바리케이드를 지루하게 지나야 비로소 시작된다. 통일 뒤 동독 사람들이 가구를 몽땅 포스트모던 가구로 바꾼 부조화한 실내 풍경을 부산에 그대로 재현한 헨리케 나우만의 ‘2000’,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을 소재로 분단에 따른 상처의 실체를 따지는 임민욱의 ‘만일의 약속’ 등은 분단 상황을 맞이하고, 살아온 이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전시방식에 대한 묘한 신경전도 볼거리다. 부산을 책임진 리쿠페로 큐레이터는 “규모를 키워 전문가들도 지치게 만드는 초대형 전시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며 “주제 중심적인 집약적 전시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는 “전세계 미술의 새로움과 실험적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는 비엔날레라는 특징을 감안해 다양한 작품과 시각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전시 모두 11월 11일까지.
광주ㆍ부산=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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