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직접 노래를 함께 만들어 보고 싶은 가수로 소녀시대 멤버인 태연을 꼽은 적이 있다. 이효리와 빅뱅의 태양 다음으로 세 번째로 지목한 가수였다. 2009년쯤 한 방송에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박진영이 경쟁사인 SM엔터테인먼트 소속 태연을 눈여겨본 이유는 이랬다. “노래를 말하는 것처럼 하더라고요.” 박진영의 귀엔 태연의 노래가 일상의 대화와 크게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들렸다는 얘기다.
태연이 2008년 낸 솔로곡을 들어보면 박진영의 말에 공감 할 수 있을 듯 싶다. 태연은 드라마 ‘홍길동’ OST인 ‘만약에’와 같은 해 방송된 또 다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OST인 ‘들리나요’에서 속삭이듯 노래한다. 당시 태연의 나이는 열아홉. 기교 없이 맑고 고운 목소리의 여운은 제법 컸다. 드라마 못지않게 태연의 노래가 사랑을 받으면서 음악계에선 그를 ‘발라드의 교과서’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7년 노래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해 무대에서 발차기를 했던 여성 댄스 그룹 멤버의 반전이었다. 소녀시대보다 태연의 솔로 프로젝트를 더 기대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러 2015년. “빛을 쏟는 스카이(Sky), 그 아래 선 아이 아이(I) 아아~”. 첫 번째 솔로 미니 앨범 ‘아이(I)에서 태연은 시원한 고음을 뽐내며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솔로 앨범을 낼수록 태연의 영향력은 커졌다. 하지만 신작이 나올수록 그림자도 들었다. ‘아이’와 2016년 낸 앨범 ‘와이’의 동명 타이틀곡과 지난해 발매한 ‘마이 보이스’ 타이틀곡인 ‘파인’은 비슷하게 들렸다. 곡의 장르는 다르지만 태연의 보컬을 부각하는 방식이 똑같아서였다. 곡 후반 태연의 고음을 앞세워 감정을 끌어올리는 구성은 세 곡을 쉽게 각인시켰지만, 신선함엔 독이 됐다. ‘태연=고음’이란 이미지만 굳어졌고 ‘또 비슷한 스타일이겠지’란 선입견까지 생겼다. 자연스럽게 태연의 신작에 대한 음악적 호기심은 식어갔다.
태연에 대한 선입견이 허물어진 건 이번 여름이었다. 태연은 지난 6월 낸 세 번째 미니앨범 ‘섬씽 뉴’에서 새 길을 걸었다.
태연은 솔과 재즈를 버무린 ‘섬씽 뉴’에서 몽롱하게 흥얼거리고, 힙합 색이 강한 ‘바람 바람 바람’에선 가사를 씹으며 악동처럼 노래한다. 태연이 솔로 앨범에선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작업이었다. 여태 반듯한 모범생이 자유분방한 ‘힙스터’로 변했다랄까. ‘섬씽 뉴’에서 태연의 변신은 특히 놀랍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곡을 태연은 나직한 목소리로 래퍼처럼 여유롭게 누빈다. 고음은 한 번도 내지르지 않는다. 대신 비음을 섞고 호흡 조절로 숨을 불어 넣어 곡을 리드미컬하게 이끈다. ‘라이크 어 스타’로 한국에도 친숙한 영국 가수 코린 베일리 래의 목소리가 연상될 정도. ‘바람 바람 바람’에선 태연 목소리에 숨겨진 익살까지 들린다.
‘섬씽 뉴’는 제목처럼 태연의 새로운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전자댄스 음악으로 홍수가 날 지경인 K팝 음악 시장에서 네오 솔과 재즈의 분위기를 세련되게 뽑아내 다양성 면에서 반갑다. ‘태연표 발라드’인 ‘서커스’가 실려 있어 태연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엿볼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태연은 이 앨범 수록곡을 음악 방송에서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묻혔지만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까운 비운의 K팝 ‘띵작(명작을 일컫는 네티즌 용어)’.
강추
전자 댄스 음악을 넘어서 재즈와 힙합까지 아우른 태연의 발전적 미래를 보고 싶다면.
비추
‘태연표 발라드’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팬들에겐 당황스러울 수도. ‘섬씽 뉴’와 ‘바람 바람 바람’ 대신 ‘서커스’로 우회 선택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