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베트남 대표팀 수석코치
32년 전 박항서와 한방 쓴 인연
대구FC 감독 지내고도 코치 수락
“상대 벤치서 보니 한국 무섭게 강해”
거스 히딩크와 핌 베어벡(한국 대표팀 시절 감독과 코치), 알렉스 퍼거슨과 카를로스 케이로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감독과 코치).
‘명장’ 옆에는 뛰어난 ‘참모’가 있기 마련이다.
‘베트남의 영웅’ ‘쌀딩크’(베트남의 주산물인 쌀+히딩크)로 불리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옆에는 이영진 수석코치가 있다.
이 코치는 지난 해 10월 박 감독 권유로 베트남 국가대표 수석코치를 맡아 올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 얼마 전 막을 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에 힘을 보탰다.
이 코치는 훈련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대회를 준비하는 세부 일정을 짜 박 감독에게 직접 보고한 뒤 의논한다. 한국 프로축구 대구FC 감독(2010~11, 2015~16)을 지냈던 그는 “내가 감독을 해봐서 박 감독님이 뭘 원하는 지 빠르게 캐치한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편”이라며 “박 감독님이 코치 의견을 경청해주시는 게 큰 힘”이라고 말했다.
한국 프로축구 감독까지 했던 사람이 ‘축구 변방’ 베트남에, 그것도 감독이 아닌 코치로 간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이 코치는 박 감독과 오랜 인연에 마음이 끌렸다.
이 코치가 32년 전인 1986년 럭키금성(현 FC서울)에 입단했을 때 룸메이트가 박 감독이었다. 둘은 6년 터울(박 감독은 프로필상 1959년생이지만 실제 1957년생, 이 감독은 1963년생)이다. 이 코치는 “박 감독님은 선수 때도 승부욕 강하고 성질이 급했지만 알고 보면 순수하고 잔정이 많으셨던 분”이라며 “베트남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진심이 깃든 스킨십”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대표 지도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베트남행의 한 이유였다. 그는 선수시절 ‘악바리’ 미드필더로 유명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를 51경기(1골) 뛰었고 1994년 미국월드컵에도 참가했지만 은퇴 후 지도자가 된 뒤 국가대표를 맡은 적은 없었다.
베트남은 이번 아시안게임에 한국과 준결승에서 만나 1-3으로 무릎 꿇었다. 이 코치는 이번 패배가 베트남 선수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본다
그는 “상대 벤치에서 보니 한국은 정말 무섭고 강한 팀이었다”고 웃으며 “우리 ‘에이스’였던 응우옌 꽝 하이가 한국전 뒤 나를 찾아 와 ‘90분 내내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한 경기는 처음’이라고 털어놨다”고 밝혔다. 이어 “지도자가 백날 이야기하는 것보다 무엇이 부족한 지 선수가 한 번 느끼는 게 훨씬 와 닿을 것”이라며 “베트남 선수들은 임무를 주면 어떻게든 완수하려는 책임감이 매우 강하다. 그럴 때 지도자로서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 지었다.
윤태석 기자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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