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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대부분 가계부채 줄였는데… 우리만 늘렸다

입력
2018.09.17 04:40
수정
2018.09.17 09:4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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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9년간 GDP 대비 가계부채 74→95% 급증

경기부양 위한 빚 권하는 정책에 저금리 더해져

“당장 정부가 금리 올리면 40대부터 무너질 수도”

금융위기 이후 국내 가계신용 추이=그래픽 신동준 기자
금융위기 이후 국내 가계신용 추이=그래픽 신동준 기자

828조원.

2007년 말부터 올해 2분기까지 대략 10년 동안 국내에서 늘어난 가계빚 규모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말 665조원이었던 가계빚(가계신용 기준)은 지난 2분기 말 1,493조원으로 배 이상(124%) 폭증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이 혹독하게 부채 감축(디레버리징)에 나선 것과는 정반대 움직임이다.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가계빚 리스크가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경고한다. 반도체 경기 악화, 미중 갈등에 따른 수출 감소 우려 등 악재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내년 성장률까지 정부 예상치를 밑돌 경우 그간 수면 아래 있던 가계빚 문제가 터져 심각한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하는 가계부채 통계를 보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가계빚 상승률이 얼마나 가파른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16일 본보가 BIS가 43개국을 상대로 집계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통계를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3분기 이후 지난해 4분기까지 한국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9%포인트(73.9→94.8%) 증가해 43개국 중 5번째로 증가폭이 컸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과다부채 임계치를 75%로 제시했는데, 한국은 이를 19.8%포인트나 웃돈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보다 부채가 빠르게 증가한 건 물론 부채 규모 역시 위험 수위를 넘어섰단 뜻이다.

금융위기 이후 국내총생산=그래픽 신동준 기자
금융위기 이후 국내총생산=그래픽 신동준 기자

반면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적극적인 부채 감축 정책을 펼치며 가계빚 크기를 줄여왔다. 미국은 2008년 3분기 97.3%였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지난해 말 78.7%로 18.6%포인트 낮췄다. 같은 기간 스페인(-20.4%포인트), 덴마크(-10.4%포인트), 영국(-6.8%포인트), 독일(-6.6%포인트), 일본(-1.3%포인트) 등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경제 규모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췄다.

주요 선진국과 달리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가계빚이 폭증한 건 정부가 경기 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사실상 ‘빚을 권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건설 경기를 띄우려고 지속적으로 거래 활성화 정책을 쏟아내며 주택 수요층을 자극했고, 여기에 금융위기 이후 형성된 저금리 기조로 시중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가계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과열이 주변 지역으로 빠르게 번지다 보니 정부의 가계빚 억제책도 잘 먹히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해도 집을 사려는 수요가 넘치다 보니 가계빚 급증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빚에 보조금을 대줘 주택시장을 띄웠지만 경제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빚만 남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빚을 감당할 여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8년 말보다 42.6%포인트 급등한 185.9%를 기록했다. 쓸 수 있는 돈보다 갚아야 할 빚이 배 가까이 된다는 애기다. 한국은 집계 대상 35개 국가 중 5위다. 1~4위는 우리보다 소득이 월등히 높은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다. 이부형 이사는 “당장 정부가 미국을 좇아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 허리인 40대 중반부터 이자상환 부담이 커져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그래픽 신동준 기자
주요국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그래픽 신동준 기자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가계빚 억제책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거시 경제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동원 교수는 “가계부채는 그 자체로 문제가 안되지만 경제에 비관론이 팽배해지면 그때 문제가 된다”며 “중국 리스크가 커질 걸로 예상되는 내년에 가계빚 문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 경제의 거시 흐름엔 곳곳에 적색등이 들어오고 있다. 상반기 성장률(2.8%)은 정부 전망치(2.9%)를 밑돌고 2분기엔 설비투자(-5.7%) 등 투자지표 역시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내외 악재로 내년 경제 성장률이 2.5%를 밑돌 걸로 보인다”며 “성장률이 낮아지면 고용이 감소하는 등 경제 전반이 영향을 받고 이런 상황에서 가계빚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정부가 생산성 있는 곳으로 재정을 투입해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의 재정 정책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단순한 보조금 지급 수준에 머물러 효과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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