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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로 범죄 예측... 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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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로 범죄 예측... 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구축한다

입력
2018.09.07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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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발생률 등 방대한 데이터

AI시스템이 ‘안전도’ 영향 분석

‘가장 안전한 거리’ 과학적으로 추출

여성 성범죄 예방에 우선 초점

안심귀갓길 등 효율적 재배치

2054년 미국 워싱턴시. 사람들은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예측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의 보호 아래 범죄 걱정 없이 살아간다. 지난 2002년 개봉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프리크라임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초능력자의 뇌를 들여다보는 시스템이다.

2018년 서울 영등포구에서 여성 대상 성범죄 예측과 사전 예방을 위한 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하나둘 구축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역할은 초능력자의 뇌 대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수행한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상상이 정보통신기술(ICT)을 만나 현실이 되고 있다.

6일 영등포구와 KT는 범죄예방을 위한 도시환경설계(CPTED) 플랫폼 개발을 마치고 하반기 중 본격적으로 가동한다고 밝혔다. CPTED는 도시환경을 재설계해 안전한 도시를 구현한다는 개념으로, 우선 여성 대상 성범죄 예방에 초점이 맞춰졌다. 성범죄와 관련성이 높은 각종 데이터를 수집한 뒤 빅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영등포 지역 곳곳에 안전도 등급을 매기는 게 핵심이다.

영등포구의 경우 서울 내 총 31개 경찰서 관할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주민체감 치안안전도 조사에서 매년 30, 31위를 오가는 최하위권 지역이다. 특히 1인 여성 가구가 전체 가구의 20%(3만2,418가구)에 달해 여성 대상 성범죄에 위험이 큰 편이다.

영등포구는 ▦순찰 등을 강화한 ‘여성안심귀갓길’ 16곳 ▦택배 사고 예방을 위한 무인 방범 ‘여성안심택배함’ 10개소 ▦위급상황 시 빠르게 대피할 수 있는 ‘여성안심지킴이집’ 40개소 등을 운영 중이지만, 문제는 실효성이다. 사후적 조치에 그치거나, 관리 어려움 때문에 주민센터, 경로당, 공영주차장 등을 중심으로 인프라가 구축돼 이용률도 낮다.

3년째 영등포구에서 자취하고 있는 김은미(32)씨는 “아직 개발이 덜 된 지역이 많아 밤에 음침한 골목길을 혼자 걸을 땐 전화하는 척하면서 지나곤 한다”며 “안전 관련 시설물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김영완 영등포구 전산운영팀 주무관은 “사실 안심 택배함 등은 특별한 기준 없이 설치돼 효과가 작었고, 여성안심귀갓길 역시 임의로 안전하다 짐작되는 곳을 고르는 등 비과학적으로 운영됐던 게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가 투입됐다. CPTED에는 ▦영등포경찰서가 보유하고 있는 지역별 성폭력 발생률, 성범죄자 거주지 등 범죄 관련 데이터 ▦KT가 추출한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영등포 지역 내 여성 유동인구 정보 ▦영등포구청 주민등록 시스템으로 확보한 여성 1인가구 거주지 등이 들어가 있다. 입력된 데이터를 놓고 AI 기반 기계학습(머신러닝) 시스템이 각 데이터가 ‘안전도’에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분석한다. 안전도를 떨어뜨리거나 높이는 요소들에 대해 계산하면서 영등포 지역의 거리 10m 단위마다 1~5단계의 안전 등급을 매긴다. 이정숙 KT 빅데이터사업지원단 데이터분석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가장 발생하지 않을 곳을 1등급으로 평가하는 식으로 안전등급을 매기게 된다”며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가중치를 끊임없이 조정하면서 최대한 정확도를 높이는 머신러닝 기술이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분석 결과 영등포구 당산로 36길은 새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지역은 10m당 여성 유동인구 수가 18.07명으로 영등포구 평균(16.1명)보다 많았고 전체 유동인구 비율 역시 50.7%로 영등포구 평균(39.8%)보다 높았다. 이 지역 내 CCTV 대수는 1대로 평균(2.3대)보다 낮기 때문에 확충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같이 도출됐다. 이처럼 앞으로 영등포구에서는 안전도가 높은 곳으로 분류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여성안심귀갓길 여성안심택배함 여성안심지킴이집 등이 집중 재배치된다. 또 범죄 취약 지역에는 CCTV를 증설하고 순찰을 강화한다. 여성들이 관련 시설물을 더욱 쉽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물 위치를 애플리케이션(앱)과 웹사이트를 통해 안내할 예정이다.

김영완 주무관은 “과학적 데이터로 지역 내 정책의 신뢰도와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인력과 예산 낭비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반기 내로 시설물 배치와 정책 운용 최적화 작업이 끝나고 나면 범죄 발생률이 줄어드는 등 성과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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