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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옷장에는 왜 항상 옷이 잔뜩 있을까

입력
2018.09.05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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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계절이 바뀌고 있다. 가을이 다가오면 또 옷을 사게 된다. 사실 옷장 안에는 안 입는 옷들이 잔뜩 있다. 이미 옷이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편으로 그걸 안 입고 있는 이유들이 함께 떠오른다. 심지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경우도 있다. 이사 간다고 짐을 다 꺼낼 때나 되어서야 다시 만날 수 있다.

왜 이렇게 옷이 많은 걸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패스트 패션이다. 기본 아이템, 트렌디한 아이템, 판매자가 직접 창작한 아이템 등 수요가 있는 거라면 뭐든지 계속 내놓는다. 그리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량 생산을 한다. 많이 생산할수록 제조 비용이 낮아진다. 세상 사람들이 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옷을 구입하지는 않지만 가격대와 생산 방식은 다른 브랜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행도 계속 바뀐다. 스냅백이 유행이었다가 야구 모자가 돌아온다. 바지 통은 좁다가 갑자기 넓어진다. 프린트 티셔츠와 후드를 지나 플라워 프린트에 리넨이 온다. 이번 겨울엔 또 뭐가 지나갈지 모른다. 뭔가 유행하면 잡지나 광고에 관련 이미지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화려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 어울리는가, 꼭 필요한가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패스트 패션과 유행 탓만 할 순 없다. 충동구매의 유혹이 작용할 때가 많다. 언젠가 필요할 거 같고, 괜히 사고 싶기도 하고, 옷을 보는 순간 혹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입고 다니면 왠지 스트레스가 풀리고 일도 잘될 것 같다는 이들도 있다.

혹시 뜯어져도 수선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더 싸다. 그러면 다시 반복된다. 많이 사니까 많이 만든다. 그리고 많이 만드니까 싸게 내놓는다. 싸게 내놓으니까 또 많이 산다. 이렇게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물론 저렴한 가격이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옷은 모든 인간의 필수품이다. 지나치게 비싸지면 다른 방면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옷이 늘면서 소비자는 선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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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옷이 너무 많다. 수많은 공장들로 비용과 위험이 분산되어 노동 문제가 발생한다. 면 생산지는 농약에 오염되고,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할 땐 면의 3배에 달하는 탄소를 만들어 낸다. 옷 생산지는 공장 폐수와 염색 약품으로 오염된다. 합성섬유 옷은 세탁을 할 때 미세 플라스틱을 내뿜고, 옷 쓰레기들이 쌓인다. 이 많은 옷들은 올여름의 지독한 열대야에 분명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 싼 옷을 무심결에 사들이며 가격을 아꼈다고 좋아하지만, 높아진 에어컨 전기요금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충동구매를 하지 않고, 필요한 옷만 사고, 좋은 옷을 구입해 제 수명만큼 사용하면 된다. 트렌드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어울리는 옷을 찾는다. 하지만 이건 말이 쉽지, 옷을 대하는 사회와 개인의 태도를 총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일단 먼저 할 일은 안 입는 옷을 버리는 거다. 옷을 잘 순환시키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해야 한다. 옷을 생산하고, 사용하고, 버리고, 재활용해 다시 태어나게 한다. ‘언젠가 입을 일이 있겠지’라는 헛된 기대는 떨친다. 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곳으로 가거나, 새 옷이나 페트병, 그물이나 건축 자재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하는 게 훨씬 낫다. 다음부터 실수나 충동적으로 구입하지 않으면 된다.

꼭 비싸고 좋은 옷일 필요는 없다. 무엇이든 제 수명만큼 입으면 된다. 다만 다음에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라도 라벨에 적힌 내용과 옷의 만듦새를 잘 보고 조금이라도 오래 입을 옷을 고르면 된다. 마냥 오래 입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알맞은 양을 제 수명만큼 사용하고 버리는 습관을 지금부터라도 들여야 한다.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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