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모델이요? 그거야 말로 진짜 ‘악마의 맷돌’이죠.” 지금도 여전히 인기 있고, 앞으로도 인기가 있을 것 같은 스웨덴 모델에 대한 얘기다. 스웨덴 모델을 오래 들여다 본 한 연구자가 “제일 빨리 깨져야 할 것이 스웨덴 모델에 대한 쓸데 없이 과도한 환상”이라며 꺼낸 말이다. 전문가들이 대중적 유행에 손사래를 치는 풍경이야 늘 있는 법. 그렇다 해도 ‘악마의 맷돌’은 좀 심한 표현 아닐까.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칼 폴라니가 쓴, 어째 좀 으스스한 표현이니 말이다.
▦ 설명은 달랐다. 가령 산별 협상을 통해 비슷한 업종이라면 회사가 달라도 비슷한 임금을 받도록 한다는 연대임금제만 해도, 노동의 가치는 동일하니까 똑같이 돈 주자는 도덕적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좌파 노동 마인드’에서 나온 게 아니다. 사업하면서 그 정도 돈도 못 맞춰 줄 정도라면 차라리 그런 사업일랑 더 하지 말하는, 약한 고리를 쳐내는 ‘우파 시장 논리’에서 나온 얘기다. 대신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창업, 재교육, 재취업 등을 알선해주겠다는 논리다. 북유럽 모델 하면 늘 거론되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다.
▦ 북유럽 로망은 성공사례가 부각되면서 더 커졌다. “이 참에 실업급여 받고 1년 동안 재교육 받으면서 그간 못했던 가족여행도 했어요.” 같은 류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러나 이는 미디어 속성상 멋진 성공 사례일 뿐이다. 사회안전망이 제 아무리 탄탄하다 해도 몇 년 다니던 직장이 정리되고, 다른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터는 정체성이기도 해서다. ‘스웨덴 모델이야 말로 악마의 맷돌’은 그래서 하는 말이다. 구조조정 스트레스는 완화될지언정 사라지진 않는다.
▦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자영업의 아우성이 터져나오면서 ‘족보에도 없는 소득주도성장’이란 이름 아래 ‘이념에 찌든 운동권 놈들이 나라 살림 거덜 낸다’는 식의 색칠하기가 또 요란하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너무 많고, 이는 복지제도의 구멍 때문이며, 적절한 수준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긴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다. 최저임금은 올랐고 이를 커버하기 위한 예산안이 논의선상에 올랐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방향을 물어보자. 우리는 진짜 스웨덴 모델이란 것이 부러우며 그렇게 되고 싶은가. 생산적 논의를 보고 싶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