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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모욕ㆍ가짜 논쟁…” 美 정치판 비판
클린턴ㆍ고어ㆍ체니 등 고인 마지막 길 배웅
‘외톨이’ 트럼프, 특검 비난 트윗ㆍ골프장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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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 딸 “美는 언제나 위대” 트럼프에 직격탄
트럼프 “美를 다시 위대하게” 대문자 반발 트윗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워싱턴 국립성당에서 엄수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 장례식 에서 추모 연설에 나선 이는 그와 대권을 놓고 경쟁했던 조시 W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다. 자신의 마지막 길을 생전의 라이벌에게 맡긴 것은 애국적 가치 속에서 정파를 초월하고자 했던 매케인 의원의 유지(遺志)가 상징적으로 구현된 장면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도널드 트럼프 현직 대통령이었다. 용기와 품격, 통합 등의 미국적 덕목을 보여준 영웅으로 칭송된 매케인 의원에 대한 추모는 ‘트럼프’라는 이름이 직접 거론되지 않았지만 미국을 분열시킨 트럼프식 정치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워싱턴 주류를 공격해 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주류 대 비주류 간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이었다.
2000년 대선 당시 매케인 의원과 당내 경선에서 맞붙었던 부시 전 대통령은 “그는 나를 좌절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또 “우리가 누구인지 잊고 우리의 대의에 싫증을 느끼는 유혹에 빠지면 존의 목소리가 어깨 위에서 속삭이듯 들릴 것이다. 우리는 이보다 더 낫고, 미국은 이보다 더 낫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오바마 전 대통령도 매케인 의원이 자신에게 조사를 부탁한 데 대해 “소중하고도 남다른 영광이었다. 슬픔과 함께 놀라움도 느꼈다”면서 초당파적 자세로 민주주의적 가치에 헌신한 매케인 의원을 기리는 동시에 그의 뜻에서 빗나간 현재 미국 정치판도 대비시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의 정치와 공적인 담론들은 번지르르한 말과 모욕, 가짜 논쟁, 인위적 분노를 주고받으며 작고 하찮고 비열해 보일 때가 많다”면서 “이런 정치는 용기 있는 척 하지만 사실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존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크게, 이보다 더 나을 것을 촉구했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더 나을 것’을 촉구한 두 전직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잃어버린 미국적 가치의 회복에 대한 염원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딸 메건 매케인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더 위대하게’ 슬로건을 겨냥해 “존 매케인의 미국은 언제나 위대했기 때문에 더 위대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아버지가 기꺼이 한 희생의 근처에도 안 와 본 사람들의 값싼 레토릭”, “아버지가 고통 속에 복무하는 동안 안락과 특권의 삶을 살았던 이들의 기회주의” 등의 표현도 쏟아 내며 분노에 찬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조 리버먼 전 상원의원 등이 조사로 매케인 의원의 영웅적 삶을 추모했다.
2시간35분간 진행된 장례식에는 두 전직 대통령 부부 외에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앨 고어 전 부통령, 딕 체니 전 부통령 등 정파를 떠나 미국 정치권과 각계 인사들이 총출동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외톨이 신세였다.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특검 수사를 재차 비난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 개정 협상과 관련해 캐나다에 엄포를 놓는 등 ‘폭풍 트윗’을 날리며 변함없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매케인 의원에 대한 언급은 내놓지 않은 채 평소 주말처럼 골프장으로 향했고, 그 이후 대문자로 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짧은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메건 매케인의 연설에 불만을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로이터통신은 “거의 모든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집결한 가운데 트럼프는 부재를 통해 그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며 “매케인이 오바마와 부시에게 조사를 부탁한 것은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처럼 통합의 정치와 분열의 정치가 극적으로 대비된 이번 장례식을 두고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흔들려고 했던 워싱턴 제도권의 강력하고 단합된 방어였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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