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뽐낸 신세대 스트라이커
손흥민 “드리블 중 듣고 비켜줬다”
답답했던 일본전 시원한 첫 골 후
자신만만 토요타 광고판 세리머니
큰 무대에 강한 독특한 기질 눈길
1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치비농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 일방적으로 몰아치면서도 골이 터지지 않아 애 태우던 연장 전반 3분, 후반 교체로 들어간 이승우(20ㆍ베로나)의 왼발이 불을 뿜었다. 손흥민(26ㆍ토트넘)이 상대 수비를 제치기 위해 밀어 넣은 볼을 이승우가 가로채듯 반 박자 빠른 왼발 강슛으로 연결해 그물을 갈랐다.
한국은 8분 뒤 손흥민의 크로스를 받은 황희찬(22ㆍ함부르크)이 돌고래처럼 뛰어 올라 헤딩슛으로 두 번째 골을 터뜨리며 승기를 잡았다. 연장 후반 10분 1골을 내줬지만 끝까지 2-1 승리를 지켜내며 2014년 인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고 최다 우승국(1970 1978 1986 2014 2018) 반열에 올랐다. 한국이 원정 아시안게임에서 정상에 오른 건 공동 우승이었던 1970년과 1974년을 빼면 최초다. 1986년(서울), 2014년(인천)은 모두 안방이었다.
‘겸손을 곧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에서 이승우는 독특한 존재다. 경기 뒤 손흥민은 “드리블 하고 지나가는 데 (이)승우가 ‘나와! 나와!’ 해서 빨리 비켜줬다”고 웃었다. ‘대선배’이자 프리미어리그 톱 클래스의 공격수에게 비키라고 말하는 당돌함을 가졌다. 그는 4년 전 태국 방콕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 일본과 8강을 앞두고 “일본 정도는 가볍게 이긴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실제 경기에서 일본 수비 4명을 달고 60m를 단독 드리블한 뒤 골키퍼까지 제치는 환상적인 골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골 세리머니도 눈길을 끌었다. 이승우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인 토요타 광고판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가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했다. 한일전을 다분히 의식해 미리 준비한 세리머니였다. 이승우 아버지 이영재 씨는 “승우는 어렸을 때부터 탤런트 기질이 다분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했다”고 했다. 이승우는 이란과 16강전 쐐기골(2-1), 베트남과 준결승전 선제골과 쐐기골(3-1) 이어 결승에서도 결정적인 선제골로 큰 무대에 강한 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한국의 우승 과정은 ‘반둥 참사’가 있어 더 드라마틱했다. 이번 대회 출전국 중 최강으로 평가를 받던 김학범호는 반둥에서 벌어진 조별리그 2차전에서 약체 말레이시아에 1-2로 덜미를 잡혔다. 그러나 이 패배가 쓴 약이 됐다. 선수들은 ‘최고’라는 자만심에서 벗어났다. 조 2위로 밀려 16강에서 이란, 8강에서 우즈베키스탄 등 잇달아 강호와 만났지만 ‘도장 깨기’ 하듯 모두 넘어섰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베트남과 ‘한국인 사령탑 더비’에서는 한 수 위 기량을 뽐냈다.
이번 대회가 낳은 ‘최고 스타’는 황의조(26ㆍ감바오사카)다. 그는 9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대회 전 불거졌던 ‘인맥 축구’ 논란을 완전히 잠재웠다. 현역 군인 신분인 황인범(22ㆍ아산 무궁화)은 귀국 뒤 곧바로 조기 전역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