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심사대상 93% ‘가능’ 결정
업무 연관성 있어도 74%가 패스
재취업 제한 말로만… 형식적 심사
회의록ㆍ사유 일절 외부 공개 안해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을 3급으로 퇴직한 A씨는 퇴직 한 달 만에 한 저축은행의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퇴직하기 전 5년 이내, 금감원 저축은행검사국 대부업검사실에 소속돼 일한 적이 있어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취업심사에서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A씨에게 취업가능 판정을 내려 무사히 이직에 성공했다.
대기업을 압박해 퇴직 간부를 채용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재취업 비리 사건을 계기로 인사혁신처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제도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재취업 허용 비율이 10명 중 9명 꼴로 지나치게 높고 가부를 결정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이 지금처럼 철저하게 ‘비공개’로 이뤄지는 한, 반복적인 재취업 비리를 막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공정위 사건의 경우에도 취업심사 제도가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조직적인 움직임 앞에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준다. 검찰은 지난달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포함한 12명을 재판에 넘겼다. 대기업 16곳을 압박해 퇴직 간부 18명을 채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민간 기업의 인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전 5년간 일했던 부서∙기관(2급 이상)과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곳에 3년간 취업할 수 없고 취업을 할 경우 차관급 정부위원 4명과 민간위원 7명으로 구성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는 이들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재취업을 허용했고, 일부는 아예 취업심사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갔다. 최근 5년간 취업심사를 받은 공정위 퇴직 간부 31명 중 취업제한(불승인 포함) 판정을 받은 사람은 5명뿐이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가 7월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4~2017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가능(제한)’ 심사를 받은 퇴직공직자는 1,465명으로 이 중 93.1%(1,340명)가 취업가능 결정을 받았다. 같은 기간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지만 ‘공공이익’ ‘전문성’ 등 특별한 사유를 고려해 재취업을 허용하는 ‘취업승인(불승인)’ 심사에서는 퇴직공직자 200명 중 74%(148명)가 취업승인 결정을 받았다.
신동화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심사 자체가 취업을 엄격히 제한하기보다는 너무 노골적이지만 않는다면 허용해주는, 온정주의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사처는 이에 대해 취업을 제한(불승인)당할 소지가 높은 공직자들이 애초 심사 자체를 신청하지 않아 생긴 결과라며, 오히려 취업심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위원회 회의록은 물론, 사유에 대해서 일절 공개하지 않다 보니 외부에선 위원회가 왜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어떤 이유로 취업승인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취업심사가 ‘고무줄 잣대’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인사처는 매달 심사 이후, 개인정보 보호와 회의록이 공개되면 위원들의 발언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퇴직 당시 소속과 직위(직급) ▦퇴직일 ▦취업예정 업체(직위) ▦취업일자 ▦결과만 공개한다. 2016년 1월 퇴직한 육군준장이 한화종합화학 비상근자문위원으로, 지난해 12월 퇴직한 육군소장이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자문위원으로 재취업하는 것을 허용했다고만 공개하는 식이다.
이번 공정위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취업심사를 아예 건너 뛰는 ‘임의 취업자’를 사전 차단할 수 없다는 것도 제도의 허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4년간 위원회 소관 총 648명의 퇴직공직자가 취업심사를 받지 않고 임의 취업한 사실이 적발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63.4%는 ‘생계형 취업’ ‘자진 퇴직’을 이유로 과태료 부과나 해임 요구 같은 제재 조치를 받지 않았다.
일각에선 관피아 근절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선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고위직으로 퇴직하면 일정 기간 동안 이전 소속 기관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하는 등 유착 가능성이 높은 특정 행위나 특정 활동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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