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의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이 벌어진 29일 인도네시아 치비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특별했다. 경기장에 들어찬 관객 5,689명이 양 팀 모두를 상징하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 마치 같은 팀의 응원단 것처럼 보였다. 베트남 관중석에는 ‘고마워요, 박항서’라는 영어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후반 24분 베트남의 쩐 민 부옹이 1-3으로 추격하는 멋진 프리킥 골을 터뜨리자 한국 팬들도 아낌 없이 박수를 보냈다.
경기 전 김학범 감독과 박항서 감독은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뜨겁게 안았다. 한국 축구에서 쫓겨나듯 베트남 지휘봉을 잡은 뒤 ‘4강 신화’를 쓴 박항서 감독과, 마찬가지로 비주류 출신 감독으로 우승에 도전하는 김학범 감독의 대결이다. 두 감독은 2006~2008년, 그리고 2012년 같은 리그에 속해 맞대결을 펼쳤고 6년 지난 이날 아시안게임 준결승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 서로를 겨눴다.
불같이 화를 내며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박 감독도 손흥민이 스로인을 하기 위해 다가오자 괜히 손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도 이날 경기는 남달랐다. 이승우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한국인 감독끼리 하는 경기여서 저희로서는 좀 더 특별했다”며 “결코 오늘만큼은 지지 않고 감독님을 위해 뛰자고 했던 마음이 이길 수 있었던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고국을 상대로 ‘신화’에 도전하는 박항서 감독의 심정도 복잡 미묘했다. 경기가 1-3 한국의 승리로 끝이 나자 먼저 김학범 감독에게 박수를 치면서 다가간 뒤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한 살 동생인 김학범 감독은 박항서 감독의 축하에 머리 숙여 감사인사를 건넸다. 김학범 감독은 경기 직후 “먼저 우리가 이겨서 박항서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말씀 드린다”며 “오늘 양 팀이 충분히 좋은 경기를 했다”고 예우를 갖췄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선수들이 한국을 상대해서 최선을 다 해줬다고 생각한다”며 “한국팀과 김학범 감독에게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항서 감독이 말을 마치자 회견장에 있던 베트남 기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박항서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베트남 기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악수를 나눈 뒤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치비농=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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