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매직’은 4강까지였다. 조별리그 3전 전승, FIFA 랭킹 71위의 시리아를 꺾으며 파죽지세로 달리던 베트남은 29일 한국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나 이날 응원 열기만큼은 앞서 이긴 경기 못지 않았다.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의 경우 전반전 종료 직후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지키며 베트남 선수들을 응원했다.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시청) 앞 응우옌 후에 광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 앞에는 이날 일찌감치 직장인과 학생 등 수 천명이 운집했다. 많은 기업들이 이날 오후 4시(현지시간) 경기 시작에 맞춰 단축 근무에 들어갔다.
붉은 티셔츠와 금성홍기, 부부젤라 등으로 무장한 베트남 시민들은 베트남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반응했다. 전반 6분 이승우 선수, 27분 황의조 선수가 연속으로 골을 기록, 패색이 짙어지자 침울한 표정과 함께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벳남 고레, 벳남 고레(베트남 힘내라)’를 연신 외쳤다.
친구와 응우옌 후에 광장을 찾은 키 냐(23)씨는 “2대0으로 베트남이 지고 있지만, 후반전에 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하지만 베트남이 지더라도 실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며 4강까지 올라온 데 대해 감독과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우기를 맞아 하루에 1, 2회 내리던 비가 하필이면 전반전 경기가 끝나자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비옷, 우산을 챙겨오지 않은 일부가 스크린이 잘 보이는 인근 상가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많은 이들이 비를 맞으면서 자리를 지켰다. 학생 후이 보(17) 군은 “옷이 젖고 안 젖고의 문제가 아니다”며 베트남 팀을 응원했다. 경기 69분에 프리킥을 얻어 베트남의 민 브엉 선수가 찬 공이 한국 측 그물을 흔들자 젖은 옷으로, 들고 있던 우산들 내던지고 얼싸 안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추가 5분이 주어졌지만 베트남은 점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경기는 끝났다. 그때쯤 내리던 비도 그쳤다. 호찌민 시민 푸엉 니(22)씨는 “한국에 패해서 아쉽지만, 결승전에서는 한국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베트남 팀을 여기까지 이끌어 준 박항서 감독을 이유로 들었다.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 유웬 영(26)씨는 “한국은 강팀이다. 아시안게임 챔피언이고 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팀이다. 오늘 한국에 졌지만, 한국의 박항서 감독이 앞으로 베트남에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베트남은 9월 1일 아랍에미리트와 동메달을 놓고 격돌한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