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방북 취소 5일째 침묵
美, 北 전향 때까지 압박 태세에
70주년 9ㆍ9절 앞둔 北은 조바심
北기관지 “신뢰없이 적대 해소 못해”
타협이냐 대결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북한이 섰다.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인 만큼 북한이 전향할 때까지 대화를 미루고 압박만 계속할 수 있다는 대북 메시지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발신하면서다. 그러나 이번에는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전처럼 북한이 자세를 낮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우세한 관측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된 지 닷새째인 29일에도 북한은 직접 비난 등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장고(長考)에 들어간 모양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추가 중단 계획이 없다”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발언 직후인 이날도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을 통해 “신뢰와 존중이 없이는 언제 가도 조미(북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변죽만 울렸다.
승기는 미국이 잡은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해결이 당장 시급한 현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북한이 핵ㆍ미사일 실험 감행으로 대화 테이블을 엎지만 않으면 불리하지 않다고 계산했을 공산이 크다. 조바심을 느끼는 쪽은 북한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정권 수립 70주년 9ㆍ9절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싶은 북한 정권으로서는 8월 말, 9월 초가 외교적 성과 면에서나 제재 완화 면에서나 반드시 붙잡아야 할 기회였는데, 미국이 재를 뿌린 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 물질ㆍ시설 목록 신고 같은 ‘선(先) 비핵화 조치’ 요구를 수용하면서 미국에 끌려가는 길을 택하지는 않으리라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들 견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외교ㆍ경제 고립 탈피가 절실했던 5월과 지금 북한의 사정은 같지 않다”고 했다. 대중 접경 무역과 중국 관광객 수용 등으로 당분간 제재를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한 데다 미국의 군사 옵션 선택 가능성이 현저히 감소했고, 무엇보다 저자세로 대미 핵 협상을 재개하는 게 외세에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했다는 대(對)인민 9ㆍ9절 메시지와도 모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 압박이 최근 거세진 듯해도 실제로는 협상 초반 기선 제압 성격이 강한 만큼 9월 중순까지는 북한이 별 반응 없이 정세를 관망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매티스 장관의 한미 훈련 관련 발언 등은 실제 압박이라기보다 북한을 자극하려는 제스처라 보는 게 합당하다”며 “미중 간 무역 전쟁 형세를 봐가면서 북한은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국지전 차원에서 기 싸움을 벌일 수 있다는 예상도 없지는 않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중국에서 경제적 지원 약속을 받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난을 자제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하면서도 매파 실무자를 성토하는 선의 수위 조절로 미국의 의중을 떠보려 할 수 있다”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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