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나라다. 가장 인구가 많은 뉴사우스웨일스주에 발생한 잦은 가뭄으로 농가가 타격을 입어 가축에 먹일 건초를 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달 들어 타조와 비슷한 호주 야생동물인 에뮤 떼가 물과 음식을 찾아 마을로 대거 난입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지난 4월 미국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최근 2년간 해양열파로 인해 호주 동부 해안의 대산호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가운데 절반가량이 폐사했다.
그러나 호주는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이기도 하다. 2017년 1년간 406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전세계 석탄 수출의 36.6%가 호주산이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배출 규제 정책은 늘 호주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7일(현지시간) “근 10년간 3년 임기를 채운 호주 총리가 없을 정도로 단명했는데 그 이면엔 늘 기후변화 정책 논란이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호주 ABC방송에 따르면 1997년 이래 현직 호주 총리가 내세운 기후변화 관련 에너지정책 입안은 총 7차례 실패했다. 노동당 소속 줄리아 길라드와 케빈 러드, 그리고 자유당 소속 맬컴 턴불 전 총리는 사실상 입안 실패로 정치적 타격을 입고 소속 정당내 반발로 총리직에서 밀려나야 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이번에 물러난 턴불 전 총리의 경우, 국가에너지보장제도(NEG)라고도 불리는 에너지 공급 안정과 탄소배출 저감정책을 조합한 계획을 내세웠지만, 지지율 하락과 당내 보수 성향 의원 반발로 포기했다. 그러자 정치적 기회를 엿본 피터 더튼 내무장관이 자신을 지지하는 장관들의 줄사퇴를 이끌면서 당권에 도전했고, 버티지 못한 턴불 전 총리는 의원직까지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작 자유당이 내세운 후임은 턴불 전 총리의 측근으로 꼽히는 스콧 모리슨 재무장관이었다.
ABC방송은 호주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기후변화 대응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지만, 정략적 이해관계 때문에 오히려 호주 정치의 대표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 정부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선언과 다른 가입국의 미온적 태도로 국제 기후변화 대응체제가 무기력해진 것도 사실이다.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 서명한 당사자인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는 14일 성명을 통해 “큰 나라들이 파리 협약에 신경 쓰지 않고 있는데 우리가 왜 해야 하느냐”라며 호주도 파리 협약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의 2017년 온실가스 배출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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