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등 21개 교육시민단체
학폭 개선ㆍ유치원 방과후 영어 등
하반기 모든 숙려제에 참여 거부
“학생부 숙려 결과 공약만 미뤄져
무의미한 예산낭비ㆍ혼란만” 주장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에 이어 주요 교육현안을 공론화에 부치려던 정부의 방침에 제동이 걸렸다. 진보 교육시민단체들이 하반기 예정된 학교폭력 개선방안 및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관련 정책숙려제에 모두 불참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입개편 공론화 시나리오 설계에 참여했던 주요 단체는 물론 상반기 진행된 학생부 개선 정책숙려제에 정책자문을 했던 5개 진보교육단체가 모두 빠지는 셈이라 교육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21개 교육시민단체들은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하반기에 진행하기로 한 모든 정책숙려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지난 두 차례의 공론ㆍ숙의과정은 교육부가 국민에게 정책 결정 책임을 전가한 무책임한 행정의 대표적 사건이었다”고 비판하며 “교육부 예고대로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등의 문제를 정책숙려제로 해결하려 한다면 또다시 무의미한 예산낭비와 사회적 혼란만 반복할 것”이라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국민 관심이 높거나 갈등이 예상되는 정책을 ‘정책숙려제’에 부친다고 밝혔다. 정책숙려제란 100~200명의 시민참여단이 전문가, 이해관계자와 함께 주제를 학습한 뒤 의견을 수렴하거나 권고안을 도출해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작은 공론화’다. 교육부는 이 과정을 통해 국민의 지지와 공감 등 견고한 정책 추진 동력을 얻을 거라 기대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반대였다. 상반기 대입제도 공론화 및 학생부 개선 숙려 결과 고교학점제 등 주요 교육공약 도입시기가 미뤄지고 학생부에서 빼려던 수상경력 항목이 존치되는 등 오히려 정책방향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고, 교육당국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만 높아졌다. 지난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일부 위원이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조만간 예상되는 청와대의 개각 대상에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단체들이 불참한다고 정책숙려제 진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핵심 단계는 시민들의 숙의토론이기 때문이다. 단체들의 역할은 시민들이 정책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숙의 자료를 만들거나 전문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자문’에 한정돼있다. 최성부 교육부 혁신행정담당관은 “교육단체들이 함께하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주요 쟁점과 주장에 대해 설명할 다른 전문가를 섭외할 수 있다”며 “자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현 상황에 맞는 로드맵을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향후 정책숙려제 진행이 삐걱대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진보교육단체들 대부분이 뜻을 같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대신할 다른 대표성 있는 단체를 섭외하는 건 쉽지 않다. 최악의 경우 중립성 확보를 위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참여를 제한해야 할 수도 있다. 숙려제 결론에 대한 신뢰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교육정책은 내용이 복잡해 이해관계자들이 쟁점형성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데 공론화가 외려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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